[한마당-박병권] 말의 성찬

입력 2012-12-11 18:42

흔히 선거를 말의 성찬이라고 한다. 각종 공약이 발표되고, 상대방을 공격하며 방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말들이 오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정치의 속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해보면 결국 남는 것은 말뿐이다. 우리의 경우 과거 한때 대통령의 말이 법보다 위에 있을 때도 있었다. 그만큼 말의 위력은 셌다. 대통령뿐 아니라 야당 대표의 말의 힘도 상당히 위력적이다.

이 때문에 순자는 ‘쓸데없는 말과 급하지 않는 일은 버려두라(無用之辯 不急之察 棄而勿治)’고 가르쳤고, 공자도 ‘평생 선을 행해도 한마디 말의 잘못으로 이를 깨뜨린다’고 가르쳤다. 독과 약을 가진 말의 양면성을 간파한 교훈이라 할 만하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명심보감에는 말과 관련된 교훈이 한둘이 아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그 따뜻함이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그 날카로움이 가시와 같으므로 한마디 말은 천금과도 같다(利人之言 煖如綿絮, 傷人之語 利如荊棘, 一言半句 重値千金). 이런 표현도 있다. ‘입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어느 곳에 있더라도 편안할지니라(口是傷人斧 言是割舌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The Rhetoric of Aristotle)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물론 설득에 관한 논리다. 어차피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설득을 잘하려면 설득당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득을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설득할 필요도 없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대통령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말을 잘 못한다고 대통령을 잘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하겠다고 자부하고 나왔으면 제대로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말하는데 중간에 끼어 발언 기회를 봉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세 사람의 말에 나라의 명운을 걸고 있다. 말을 하되 제대로 하고, 말을 하기 전에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또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준비하고 나와야 하며, 내가 한 말이 나라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해야 한다. 그저 나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눈을 흘겨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열정은 모든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정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청중을 감동시킨다. 그리고 그 청중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