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新남순강화의 앞날은
입력 2012-12-11 18:37
“한국은 1980년대에 이미 공직자 재산신고제를 도입했고 90년대 들어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재산공개를 시작했지만 지금 그들은 성공했습니까?”
청렴제도 및 부패예방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런젠밍(任建明) 베이징항공항천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주재로 열린 반(反)부패 좌담회에서 공무원 재산신고제 전면 실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도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며 “그러니 중국은 (그들과는 다른) 특별한 제도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간신문 남방주말(南方週末)이 좌담회 상황에 대해 취재에 나섰을 때였다.
중국이 부패 추방을 위한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에 들어선 느낌이다. 18차 당 대회 뒤 지금까지 한 달도 채 안 된 사이에 부패로 조사받고 있는 관리는 드러난 것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른다. 축첩, 권력남용, 부정축재 등 토착형 비리가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네티즌의 인터넷 고발이 엄청난 역할을 했다.
이들 가운데 중앙기율검사위 조사를 받고 있는 리춘청(李春城) 쓰촨성 부서기가 가장 고위급이다. 류치바오 중앙선전부장도 관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막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일도 있다. 최근 안후이성 우후경제개발구 내 법원, 검찰원, 공안은 5성급 호화 호텔에서 연석회의를 열었다가 네티즌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에 참석자들은 회의비용을 각자 부담키로 했다고 우후시정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발표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시대 개막과 함께 중국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의 권위주의를 벗어던진 ‘신(新)남순강화’를 지켜본 네티즌들은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시진핑이 광둥성을 맨 먼저 찾은 것은 현재 공산당이 처한 상황에서 ‘시진핑 노선’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다.
20년 전인 1992년 천안문(天安門) 사태 뒤 보수파의 목소리가 커진 혼란기에 덩샤오핑(鄧小平)이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제시했던 개혁 개방이라는 길을 계속 가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을 딛고 새 지도부가 출범한 만큼 당내 보수파를 견제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점도 그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20년 전과는 시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당시는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때였다면 지금은 빈부격차가 문제가 되는 시기다. 부정부패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것도 마찬가지다. 웨이보로 대표되는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도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시진핑은 신남순강화 과정을 통해 정치 개혁, 경제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겠다는 신호를 꾸준히 보냈다. 그 바탕에는 사회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면 당과 국가의 미래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따라서 신남순강화를 단순한 이벤트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탈(脫)권위를 외칠수록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과격한 요구가 봇물 터지듯 분출할 수 있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욱이 현재로서는 공산당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권력형 비리를 어떻게 다룰지도 분명치 않다. 시진핑이 신남순강화를 통해 장정을 시작했지만 그 앞날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들은 도처에 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