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어야
입력 2012-12-11 18:38
얼마 전 내 수업을 듣는 A가 “저 등단한 거 같아요”라는 전화를 했다. ‘등단을 했으면 했지 등단한 거 같은 건 뭔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응모해서 당선되면 그 이상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내가 가르친 학생이 등단을 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사연을 듣고 나니 역시 쓴웃음만 나왔다.
이야기인즉슨, 인터넷에서 찾은 모 문예잡지라는 곳에 응모를 했더니 “당선은 됐다. 그런데 책을 70만원어치 사라. 그리고 우리가 상패를 마련할 테니, 점심값은 그쪽에서 준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A에게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라고 물었다. “이상해서 전화드린 거예요. 제가 처음 쓴 작품이고 엉망인데 당선된 것도 이상하고, 돈을 내라니 피라미드 같은 생각이 들어요”라는 A에게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다. 당선됐으면 상금을 받아야지 돈을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말해줬다.
처음 들어본 그 잡지를 검색해봤더니 올해만 벌써 여섯 번이나 당선작을 낸 상황이었다. 계간지를 만들 자금이 부족해서 그 일부를 ‘신인 양산’으로 메우는 듯했다. 그 방법이 나름 먹혀 지금까지 지탱하고 있는 모양이다. 좋은 작품을 쓴 사람이 당선돼 상금을 받고, 마침 그 사람이 돈이 많아 친구들에게 나눠줄 겸 잡지를 많이 구입한다면 서로 좋은 일이겠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음대생인 A는 글을 잘 쓰고 싶어 소설 창작수업을 듣는 중이고, 그 문예지에 냈다는 작품은 A가 처음 쓴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만화와 드라마에 둘러싸여 자란 요즘 학생들은 이야기를 만드는 솜씨들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처음 쓴 소설이니 그 수준이야 뻔한 게 아닌가. 합평시간에 다른 학생들에게 난타를 당했던 소설이다. 소설로서의 요건을 한참 덜 갖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이제 대학교 2학년생에게 70만원에다 점심값까지 준비해오라니 이건 어른의 도리가 아니다.
A가 “아르바이트해서 생활하는데 그 돈이 어디 있어요. 아직 실력이 안 되지만 그냥 응모해 본 건데 내 걸 뽑은 것도 이상해요”라고 할 때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 사회 곳곳이 부패했다는 소리가 높다. 문학도 돈을 내고 입문해야 한다면 이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렇게 등단해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사람들끼리라면 모를까, 순수한 학생들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이근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