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성기] 성별에 좌우되지 않았으면

입력 2012-12-11 18:38


어느 기독교매체에 디모데전서 2장에 관한 해석이 실린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이 가운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는 문구에 대한 해석이 상식을 뒤집는 내용이라 흥미롭기도 했다. 아담은 속은 것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행했기 때문에 속은 하와보다 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본문은 여자의 죄가 더 중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울에게서도 여성 편견 엿보여

과연 이런 해석이 원래 편지를 쓴 바울이 의도했던 바였을까 의심스러웠다. 그 글은 많은 연구 배경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변명하기 위한 교묘한 성경 해석이라고 여겨졌다. 바울의 편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에 비추어볼 때 더욱 그런 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이런 예민한 문구들을 해석할 때 바울이 성경의 저자이기 때문에 절대 무오할 것이라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바울은 여러 편지를 쓸 때 자기 편지들이 나중에 성경으로 인정되리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성경을 쓰고 있다는 ‘정경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의 목자로서 상한 심정을 가지고 교회 문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을 뿐이다. 바로 이런 솔직한 자세로 인하여 그의 편지가 성경으로 인정될 만했던 것이다.

바울도 한 인간으로서 그 시대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 바울의 구약 해석에 문제가 있는 대목들이 여럿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바울도 그 사실을 인식하고 종종 ‘이것은 주의 생각이 아니고 내 생각일 뿐이다’라는 구절을 덧붙이기도 했다. 어떤 논쟁의 여지가 있는 대목에서는 자신의 견해가 절대화되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도 그 시대의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어떤 남성들보다도 여성을 존중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성과 관련된 바울의 이런 발언들을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근본주의자들은 여성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는 작금의 시국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교회에서 여성을 목사로 안수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여성을 한 국가의 수장으로 모실 수 있을지 난감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남성도 여성성 발휘할 수 있다

어떤 부류의 여성들은 이제 억눌린 여성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여성이 대통령이 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명철학에서 여성성을 강조하는 시인은 여성 후보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선후보들의 토론을 지켜보면서 여성성에도 대조적인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심리학의 용어를 빌리면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여성성, 즉 아니마(anima)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남성도 건전한 여성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남성성, 즉 아니무스(animus)가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여성도 어느 폭군 못지않게 잔혹한 남성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남녀의 성별에 좌우되지 않는 판단기준을 가지고 임하는 이번 대선이 되었으면 한다.

조성기 소설가·숭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