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영숙 (10) 한국 기독교육을 위한 소명 “교재를 만들자”

입력 2012-12-11 18:33


유치부 교육 전도사의 발령을 극구 사양하는 나에게 이동원 목사님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라고 하셨다. 사역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내게 목사님은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자격이 있는 사람을 쓰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포지션을 주어 키워서 사용하신다”며 순종할 것을 강조하셨다.

이날 목사님의 권면의 말씀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당시 목사님은 능력도 없는 어린 나를 과감하게 세우셨고 창의적인 안목과 이치에 맞게 나를 설득하셨다. 이를 계기로 다음 세대를 향한 비전은 더욱 확고해졌고 더 큰 사명감을 가질 수 있었다.

교육 전도사로 사역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기독교 교육 현장에 자료가 없다는 거였다. 교회학교 학생들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가 마땅치 않았다. 유치부 아이들을 위해 설교를 준비하면서 늘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반드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좋은 교재를 만들겠다고. 그때 서원했던 것을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룰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성품 나라’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가르치는 귀한 교재가 되어 많은 교회와 기독교학교, 가정들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믿지 않는 학생들을 위한 좋은나무성품학교의 성품 교재들과는 달리 기독교교육용으로 따로 구성된 12가지의 성품교육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가고 있다.

교재를 만들면서 젊은 시절 이 목사님에게서 배운 창의적인 생각들을 떠올렸다. 좋은나무성품학교에서 정의하는 창의성이란 모든 생각과 행동을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의 피조물인 나를 성숙시키시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키우고 계신다. 나는 오늘도 그분의 성품을 닮아 나의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해 본다. 창의성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나는 이 목사님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목사님에게 제자훈련을 통한 성경공부를 체계적으로 배워 숭의여대를 비롯해 훗날 미국 유학 중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쳤다.

어디 이뿐인가. 내 인생의 또 다른 가장 큰 축복인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이 목사님이 인도하는 성경공부 모임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그때 내 나이 19세. 간증하는 내 뒷모습에 반했다는 청년 김기열은 3년 동안 나를 유심히 지켜봤다고 했다. 그리고 프러포즈했고 3년간 연애하다 1984년 3월17일 우리는 결혼했다. 남편과 나는 만나면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암송하며 묵상하는 것으로 연애를 대신했다. 이런 엄마 아빠의 러브스토리를 아는 아이들은 “진짜 사랑을 몰라서 연애시절을 그렇게 재미없게 보냈다”고 놀리곤 한다. 그럴 때면 남편은 세 아들에게 강조한다. “아빠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고, 둘째는 기술고시에 붙은 것, 셋째는 엄마를 만난 것이다.”

결혼 2년 만에 우리는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에도 우리는 학생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쳤다. 그 옛날 이 목사님이 자신의 집을 개방해 성경을 가르쳤던 것처럼 우리 부부도 집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결혼 전 배우자를 놓고 기도하면서 ‘가정을 열어 성경공부하겠다’고 서원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느 해는 33명의 청년들이 모여 1박2일 수양회를 우리 집에서 열었다. 밥해주고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는데 현기증이 나면서 몸이 너무 안 좋았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병원에 가보니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이다.

힘든 사역임에도 멈출 수 없는 것은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면서 놀랍게 변화되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