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1950년대 미공개 詩 햇빛
입력 2012-12-10 18:16
내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는 다형 김현승(1913∼1975) 시인이 한국전쟁 중에 쓴 시가 발굴·공개됐다. 1952년 국방부 정훈국에서 발행한 월간 ‘국방’ 제11호에 실린 ‘시련이 더욱 가혹할지 모르지만-1952년을 위하여’가 그것.
“허물어진 초토 위에 또 다시 폭탄을 묻는/ 판문점의 부당한 회담 속에서,/ 흥분된 이 거리의 벽을 향하여 비추는/ 1952년은, 1951년에서 받은 시련보다/ 그 바람이, 그 물결이 더욱 더 사나울지도 모르지만,/ (중략)/ 오로지 그러한 시련 속에서만/ 오로지 그러한 시련 속에서만 그러나, /해마다 전진하는 자유의 세계!”
계간 ‘문학의 오늘’ 2012년 겨울호에 이 시를 공개한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이 시는 1951년 10월 25일 열린 판문점 휴전회담을 직접 거론하고 있다”고 전제, “김현승이 느낀 부당함이란 전쟁이 잠정적으로 끝나 휴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엔 남한-유엔군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어 통일을 이룰 수 있는데 왜 휴전이라는 부당한 절차를 진행하느냐 하는 항의가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조선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김현승은 당대 문인들이 전쟁 중 택했던 ‘종군’이라는 방식을 피해 후방에서 창작을 하고 있었지만, 이 시는 전쟁이 얼마나 가파른 냉전감각으로 후방까지 밀려왔는지 하는 실감을 전해주고 있다.
시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원수의 궁전보다/ 자유의 초토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정금(正金) 같은 아아, 그네들 마음에,// 오라! 새로운 전우-1952년의 빛나는 아침이여”로 이어지고 있다.
‘정금(正金)’이란 성경 구절인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를 인용한 것으로, 전쟁의 고난을 욥의 실존적 고난으로 치환한 대목이다.
유 교수는 “전남 광주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김현승의 현실 개입방식은 기독교식 실존주의에 입각해 있었다”며 “이 시는 그런 그가 냉전이라는 당대적 감염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쓴 그의 가장 강력한 전쟁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양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현승은 1957년 첫 시집 ‘김현승 시초’를 발간, 제1회 한국시인협회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커피를 유난히 좋아해 자신의 호를 ‘다형(茶兄)’으로 지은 대표적 지성파 시인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