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겨울, 광야에 선 교회들] (3) ‘주민과 동고동락’ 희망주는 교회들

입력 2012-12-10 18:18


고민 들어주고 상처 보듬고… 영세민의 ‘든든한 이웃’

서울 마포의 A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내걸린 ‘생명사랑 빨간 우체통’은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다. 지난 5월부터 넉 달간 이 단지에서만 입주민 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마포구청이 나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단지 주민 5명 중 1명이 자살 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체통은 아파트 주민들의 자살 예방 상담을 위해 두 달 전쯤 단지 곳곳에 설치된 것이다.

이곳뿐 아니다.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어디든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산다. 신체·정신 장애나 이혼·별거 등 가정해체의 아픔, 경제적 빈곤…. 이들 곁에서 상처를 보듬고 손 내밀며 동고동락하는 ‘이웃 교회’들의 2012년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 웃을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목사님이 심방 와 주시니까 기분이 나아졌어요.”

지난 7일 오후 인천시 삼산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1700여가구 거주). 김길수(52) 예향교회 목사 부부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영자(71) 할머니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홀로 사는 김 할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23㎡(7평) 정도 되는 방에 성인 3명이 들어서자 비좁아 보였다. 벽에 걸린 아홉 살짜리 손녀 사진이 눈에 와 닿았다. 김 목사 부부는 함께 예배를 드린 뒤 김 할머니의 소소한 얘기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김 할머니가 준비해놓은 삶은 계란 5개를 맛있게 먹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은 피해의식과 소외감, 열등감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종합병원’이라고 불릴 만큼 아픈 분들도 많고요. 그래서 좀더 세심하고 꼼꼼한 관심이 필요한 사역지인 것 같아요.” 지난 5년 동안 김 목사가 경험한 영구임대단지 사역의 특징이다.

영구임대단지에서는 각종 선교 프로그램 등을 준비할 때도 현실적인 벽에 부딪치는 일이 잦다.

18년째 마포 A영구임대단지(1800여가구 거주) 앞 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K목사는 “성도의 80%가 영구임대단지 주민들인데 이들 대부분이 영세민이라 헌금을 못 내는 이들도 많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상당수”라며 “주로 주일 예배와 새벽기도,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의 영구임대단지 대부분이 저마다 종합사회복지관 시설을 두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따라서 단지 인근의 교회들은 복지사역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영구임대단지 주민들에게 교회는 여전히 ‘든든한 이웃’ 같은 존재다.

19년 전에 들어선 경기 안양시 부흥동의 관악영구임대아파트(480여 가구)는 민영 아파트 단지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지난 95년 두 단지 사이에 해성교회(한영승 목사)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양쪽 단지 주민들 간 갈등과 반목은 심했다. 15년의 담임목회를 마치고 2년 전 은퇴한 해성교회 이정구 원로목사는 “아기학교와 어린이집, 유치원, 도서관 등을 운영하면서 교회가 지역 주민들을 차별 없이 섬기는 데 솔선수범해왔다”면서 “17년이 지난 지금 양쪽 단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해성교회는 이러한 공로로 2010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수여하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포 지역에서는 최근 교회 20여곳과 기초자치단체의 협력 모임인 ‘교동협의회’가 자살예방 전문가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등 A영구임대단지 주민의 자살예방을 위한 협력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지난 9일 오후 성탄트리 점등 예배가 열린 해성교회 로비. 점등행사가 끝난 뒤 성도들이 외치는 힘찬 구호가 교회 안팎으로 울려 퍼졌다. “사랑의 빛, 전도의 빛, 구제의 빛을 비추자!” 19만 가구에 달하는 전국의 영구임대단지 주민들이 맞이하는 올겨울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인천·안양=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