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들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색경보’… 예방·관리대책 시급
입력 2012-12-10 17:56
‘40세 이상 성인 13%가 갖고 있고, 2010년 한 해 동안 약 60만명이 치료를 받았으며, 이 중 5000명이 끝내 사망한 병.’
‘한국인 사망원인 상위권에 올라있는 암과 뇌혈관질환, 교통사고, 우울증, 당뇨병 등에 견주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
바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실제 국내 COPD 환자들 10명 중 약 4명이 숨이 막혀 곧 죽을 것 같은 ‘급성악화’ 상황을 연 1회 이상 겪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COPD의 예방 및 관리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림대 (평촌)성심병원 폐센터 정기석 교수팀은 국내 47개 주요 종합 및 대학병원에 등록돼 있는 COPD 환자 1112명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36%가 연 1회 이상 급성악화를 경험하고, 이 중 38.3%는 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아주 위험한 처지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10일 밝혔다.
COPD는 만성 염증에 의해 기도와 폐 속 실질부위가 쪼그라들어 숨을 쉬지 못하는, 말 그대로 ‘폐쇄성 폐질환’이다.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든 사람, 여성보다 남성의 발생률이 높다. 특히 담배를 많이 피는 사람들에게 흔하다.
COPD의 주 증상은 기침, 가래, 호흡곤란이다. 그러다보니 COPD를 천식이나 만성기침, 폐렴 등과 비슷한 호흡기질환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다 늙어서 그러려니 하고 병원을 찾지 않는 이들도 있다.
정 교수는 COPD 증상이 있는 사람 중 47.7%가 그동안 한 번도 관련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조사결과(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가 그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급성악화’는 이들 COPD 환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호흡곤란 증상이다. 일상생활 중 늘 겪는 정도의 호흡곤란 이상으로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국 심한 기침과 가래, 호흡곤란 등 급격한 폐 기능 저하로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
이번 조사결과 이런 급성악화 발생 경험은 COPD를 앓은 기간이 길수록, 폐렴을 동반한 병력을 가진 환자일수록 많았다. 중증 COPD 환자들은 경증 환자들에 비해 급성악화를 경험할 위험도가 2.8배 높았고, 유병 기간이 10∼15년 사이인 COPD 환자들은 유병기간이 5년 이하인 환자들보다 2배, 폐렴 병력이 있는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 대비 급성악화 위험도가 11배나 높았다.
정 교수는 “COPD 환자에게서 급성악화가 발생하면 예기치 못한 중환자실 입원은 물론 심각한 호흡곤란 증상으로 사망 위험까지 높아지게 된다”며 “특히 중증도가 높고, 폐렴을 앓은 병력이 있는 COPD 환자들은 갑자기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지 않도록 평소 호흡재활 치료 및 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칫 COPD 관리에 실패하면 심장혈관질환, 골다공증, 폐암, 우울증과 불안장애, 골격근 약화 등 갖가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성악화 COPD 환자들의 사망원인 중 20% 이상이 심혈관질환과 폐암이라는 얘기도 있다.
COPD인지 여부를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가려내는 방법은 폐기능 검사다. 따라서 숨쉬는데 문제가 없더라도 평소 기침과 가래가 많은 편이라면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때 한 번쯤 폐기능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COPD 진단 환자들은 대부분 병이 50% 이상 진행된 다음에야 숨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COPD라는 진단을 받기 훨씬 이전에 그 병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COPD는 의사의 진료와 치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환자 스스로 치료 의지를 갖고 잘못된 생활습관 개선과 호흡재활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
COPD의 최대 위험인자는 흡연 행위다. 흡연은 만성 기관지염을 일으키고, 폐가 쭈그러드는 섬유화 현상을 촉진해 폐 기능을 크게 떨어뜨린다. 한번 손상된 폐 조직과 기능은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폐 기능의 저하와 COPD 발병을 동시에 피하려면 반드시 금연을 실천해야 한다. 물론 이미 COPD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경우 호흡을 편하게 해주고 급성악화로 인한 질식 위험을 막아주는 적절한 약의 사용이 중요하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