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하르트무트 코쉭 재무차관 “일관성이 獨경제 성공 낳았다”
입력 2012-12-10 21:38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가 유럽을 공황 상태로 내몰고 있다. 실업률은 치솟고 경기회복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 국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이 밝힌 올 10월 독일의 실업률은 5.4%다. 독일 통일 이후 최저 수준이다. 연금 제도가 잘 돼 있어 자발적 실업자가 많은 독일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특히 스페인과 그리스의 실업률이 각각 26.2%, 25.4%인 점과 비교하면 독일 경제의 힘은 두드러진다. 재정위기에 빠진 국가들은 독일의 지갑이 열리기만을 지켜보는 실정이다.
하르트무트 코쉭(52) 독일 연방정부 재무차관을 지난달 29일 수도 베를린에 있는 연방의회에서 만났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의 연정 파트너인 기독사회당(CSU) 소속의 6선 연방하원의원으로, 2009년 9월 재무차관 자리에 올랐다. 한·독 의원친선협회 독일 측 회장을 12년 동안 맡은 지한파 의원 겸 경제관료다.
독일 경제의 강점 1…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기술력
코쉭 차관은 “재정위기로 유럽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았을 때 독일 기업들은 최고 품질의 제품으로 승부했다”면서 “독일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더욱 조심스럽게 구매행위를 하는 불황 속에서 꾸준히 팔리는 제품이 진정으로 기술력을 갖춘 제품”이라며 “독일 제품들은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도 선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쉭 차관은 “이는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독일의 기계산업을 포함한 제조업 전반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1999년 유로화 통합 이후 독일의 EU지역 수출은 급증했다. 2010년 독일 수출의 63.3%가 역내 수출이었다. 유로존 경제위기로 최대 수출지역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독일기업은 흔들리지 않았다.
독일 경제의 강점 2…일관성 있는 경제정책
코쉭 차관은 “독일 정부는 경제정책의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맞게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좋은 정책 없이 경제안정이나 경제성장은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코쉭 차관은 정권 교체 이후에도 전임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어가는 독일 정부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 집권세력이자 지금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SPD)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경제정책의 큰 틀을 만들었고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가 그 정책을 계승했다”면서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독일 경제의 성공을 낳았다”고 말했다.
독일은 한때 통일 후유증에 시달렸다. 2003년 슈뢰더 총리는 독일 경제의 개혁 청사진인 ‘어젠다 2010’을 발표하며 독일식 경제살리기에 나섰다. ‘어젠다 2010’은 고용·연금·의료·세제·교육 등을 망라하는 개혁 패키지였다. 정년을 상향조정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먼저 구축한 뒤 해고보호법 등 과도한 고용보장 정책을 개혁하며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가져왔다.
2005년 집권한 메르켈 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슈뢰더 전 총리의 개혁정책을 계승했다.
또 일부 정책에 자신 만의 색깔을 입히기도 했다. 기업의 조세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는 세제 개혁이 대표적이다.
독일 경제의 강점 3…강한 중소기업
코쉭 차관은 “독일 정부는 중소기업만을 위한 별도의 정책을 추진한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다만 발전된 교육시스템을 통해 인재를 키웠고,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택했다”면서 “정부가 자금을 지원한 이들 연구소가 중소기업들과 기술 협력한 게 강한 중소기업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물고기를 직접 주지 않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는 의미다.
코쉭 차관은 “유럽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대기업들은 근근이 살아남았지만 다른 국가의 중소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면서 “그러나 전문분야에 특화된 기술력을 갖춘 독일 중소기업들은 경제위기가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중소기업들은 자금력이 강한 대기업과 경쟁하지 않고 그들이 하지 않는 틈새를 찾아 성공해왔다”고 덧붙였다.
독일 재무차관이 바라보는 한국 경제
코쉭 차관은 한국 경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유로존 재정위기 등 경제위기 상황을 잘 극복했다”면서 “이는 경제정책이 좋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우수한 인재들, 좋은 연구시스템,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 한·독 양국이 더욱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코쉭 차관은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의와 관련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나라는 자기만의 경제정책을 펼쳐야 한다”면서 “한국도 독일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맞는 정책을 찾아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글 하윤해 기자, 사진 이동희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