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여왕 흉내낸 호주방송의 장난전화 결국 비극으로… 왕세손비 간호사 자살·방송사 지원 끊겨

입력 2012-12-09 23:48

호주 라디오 방송의 장난 전화가 결국 두 아이를 둔 간호사의 삶을 마감하게 하는 비극적 사건으로 귀결됐다. 영국과 호주 양국에선 사건 이후 해당 방송사를 거세게 비난하는 등 여론이 들끓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영국 런던 에드워드7세 왕실 병원의 간호사 재신다 살다나가 7일(현지시간) 병원 인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살다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본 현지 경찰은 9일 호주 당국과 협력 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살다나는 지난 4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목소리를 흉내낸 호주 투(2)데이 FM라디오 방송 진행자들에게 속아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를 연결해줬다.

BBC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살다나는 사건 이후 병원 측 조사과정에서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 인도 출신 이민자인 살다나는 주변에 “외롭고 혼란스럽다”는 심경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브리스톨의 가족과 떨어져 병원 숙소에서 지내며 휴일에만 집을 찾던 처지였다. 살다나의 남편과 딸이 사고 이후 페이스북에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글을 남겨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비극적인 결과에 영국과 호주에선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줄리아 길라드 총리도 “끔찍한 비극”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호주 정부는 이번 사건 당사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법조계는 장난전화에 범죄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방송 진행자들이 법정에 서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해당 방송사는 문제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방송에서 하차시켰다. 방송사는 “두 진행자가 간호사의 사망 소식에 깊은 충격에 빠졌다. 숨진 간호사에게 애도를 표시하기 위해 복귀시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난 여론을 의식한 광고주들의 광고 철회도 잇따르고 있다. 방송사 최대 광고주인 슈퍼마켓 체인 콜스는 8일 “비극적 결과에 호주인들이 매우 분노하고 있다”며 방송사 지원을 전면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는 왕실 대변인을 통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애도를 표했다. 왕실 대변인은 “왕세손 부부는 병원의 모든 직원에게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며 “사건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간호사들을 진심으로 지지했다”고 밝혔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