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파라오 헌법’ 폐기… 투표는 강행키로

입력 2012-12-09 23:34

자신에게 초법적 권한을 부여한 헌법선언문을 발표해 이집트 전역에 격렬한 반대시위를 촉발시켰던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결국 한발 물러섰다. 무르시 대통령의 대변인인 셀림 알 아와는 8일 오후(현지시간) 카이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시간부터 헌법 선언문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무르시가 이집트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전날 이집트 주요 인사와 정치인 등 40여명과 긴급 회동을 가진 뒤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이집트 정국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새 헌법 선언은 16일 만에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

그러나 무르시는 새 헌법 초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예정대로 오는 15일 치를 예정이라고 알 아와는 전했다. 그는 헌법상 무르시가 국민투표 날짜를 연기할 권한이 없음을 이유로 들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이에 대해 “상당한 진전이지만 야권 입장에서는 요구의 절반만 관철된 것”이라고 전했다. AFP통신도 “헌법선언문 폐기 소식은 시위의 중심지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아무런 환성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집트 야권은 문제가 된 헌법선언문이 폐기됐음에도 국민투표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점에 여전히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력 야권 인사인 아므르 무사는 국민투표를 예정대로 강행하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고, 야당인 구국전선의 타레크 알 쿨리 대변인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헌법선언문 폐기 선언이 면피용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임시 헌법에 따르면 이집트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반대하면 새로운 제헌의회가 선거를 통해 3개월 이내 다시 꾸려진다. 새로 구성될 의회는 이후 6개월 내로 새 헌법 초안을 작성하게 된다.

다만 무르시와 야권 사이의 절충안이 도출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헌법선언문의 폐기 방침을 전달한 알 아와는 대통령의 비상 법률 선언권을 없애고 대통령도 사법부의 감시를 받도록 헌법 초안을 고치자는 내용이 여야 협상에서 제의됐다고 전했다.

무르시는 지난달 22일 사법기관의 의회해산권을 제한하고 대통령의 법령과 선언문이 최종 효력을 갖는다는 내용 등이 담긴 새 헌법 선언문을 발표했었다. 초안은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법의 근간으로 한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고문금지 및 여성 인권 보장 규정도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이집트 군부는 이번 사태에 개입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집트 정부는 이와 함께 치안 유지를 위해 군부에 체포권을 부여하도록 승인했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이집트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려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