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금리 10년 지속땐 은행권 5조 넘게 적자”
입력 2012-12-09 18:26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10년간 계속되면 국내 은행권이 5조2000억원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는 경고가 나왔다.
금융당국은 우리나라 경제가 저성장·저금리에 신음했던 1990년대 일본과 비슷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건전성 강화 방안을 마련토록 주문하고 금융상품 다각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연 경제성장률 1%, 기준금리 1.75%(현재보다 1% 포인트 하락)가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2017년 은행권의 당기순이익이 현재(8조5000억원)의 16.5%인 1조4000억원에 그친다고 9일 밝혔다. 당기순이익 83.5%가 증발한다는 얘기다. 이는 금융감독자문위원회가 90년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저성장·저금리 시나리오를 구상해 국내 18개 은행에 대해 단순 추산한 결과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지난 7일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경제가 인구증가율 감소와 고령화, 신성장 동력 부재에 글로벌 경기둔화까지 겹쳐 저성장·저금리 시대로 급격히 진입할 것”이라며 “90년대 일본의 초기 상황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980∼90년 평균 4.6%에서 1991∼2000년 평균 1.1%, 2001∼2011년 평균 0.7%로 급감했다. 금감원은 이 기조가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되면 2022년에는 은행권의 순손실 규모만 5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권 원장은 향후 수출 기여도가 현재보다 낮아지면 내수시장이 경제를 뒷받침하기 어려워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봤다. 그는 “수출 기여도가 70%대인 지금은 (오히려) 굉장히 좋은 편”이라며 “가계 저축률이 낮고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만 50조원을 넘어 소비를 늘릴 여력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여기에 기업들의 자금조달도 점점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마저 감당하지 못한 한계기업이 전체 1만5000여곳 중 20%인 3000여곳에 달한다. 권 원장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선진국에 비해 과대 포장된 측면도 있다”며 “한계기업의 부실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에 대비해 회사채 수급 개선, 비우량 회사채 수요 확대 등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금융권이 고령화 시대에 맞춰 즉시연금·월지급식 펀드 등 다양한 실버상품을 개발토록 지원하기로 했다. 가계부채 이슈에 대해서는 다중채무자 문제를 최대 현안으로 삼아 해결책을 모색할 방침이다.
한편 올해 국내 은행권의 수익성은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가장 악화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들어 지난 9월 말까지 국내 은행의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 줄었다”며 “순이자마진(NIM)의 하락 추세, 경기침체의 지속 가능성 등으로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