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정욱] 미시시피 대학의 시위
입력 2012-12-09 18:09
유명 역사학자 로버트 위브는 선거가 두 가지 상반된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정견의 차이를 드러내고 갈등을 격화시키지만 당파들 간의 적대적 관용에 기초한 정쟁을 제도화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통합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선거가 더할 나위 없이 공정해야 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알려진 직후 남부 미시시피 대학에서 벌어진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반 오바마 시위는 바로 선거의 통합적 기능에 도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더욱 주의를 끈 것은 미시시피 대학이 1962년 흑인 학생 제임스 메리디스의 입학에 반대하는 학생 소요로 인해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번 시위가 50년 전의 인종 폭동을 상기하는 행사 직후 발생했다는 점 역시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1863년 노예해방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인종주의는 미국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인종주의가 인간의 선천적인 차이에 기초하고 있기에 근절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인종 구획과 인종적 위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인종주의는 오래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널리 받아들이는 유전자에 의한 인종 구획이 만들어진 것은 1930년대 이후다. 일견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 분류는 사실 매우 자의적이다. 인종별로 분류된 사람들의 유전자 거의 대부분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류가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이유도 없다. 가령 유전적 차이를 가진 여러 종류의 고양이들이 서로를 나와 다른 존재로 여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전자가 인종을 구획하기 이전 인종은 신체적 차이에 수반하는 문화적 특성을 가진 인간 집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과 신체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집트인, 페르시아인, 아랍인들로부터 문화를 배웠던 유럽인들은 이들과의 신체적 차이를 무시했고 자신보다 문화적으로 앞선 사람들에 대해 동류의식을 발전시켰기 때문이었다.
특히 자신을 세련되고 여성적인 문명인과 야성적이고 남성적인 야만인의 중간자로 여겼던 로마인들은 ‘야만족’들에 대한 미묘한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유럽인은 다른 사람들과 본원적 차이를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인종과 인종주의가 유럽인들의 ‘신대륙’ 정복 이후, 특히 산업화된 유럽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인종 구획은 타자에 대한 정복, 착취,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들의 비정상적이고 추한 신체를 강조하면서 자신들과의 거리감을 강조하고 신체적 비정상이 열등한 문화적 특성을 야기한다고 믿는 사고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타자의 열등한 인종적 특성이 이들에 대한 서양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거가 된 것이다.
얼마 전 한 교수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의도적으로 신체 접촉을 피하려는 흑인 남성 옆에 앉게 되었는데 이 남성과의 대화 중 그가 한국인들이 흑인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흑인 남성의 생각이 과연 우리의 정서를 실제로 반영하고 있는지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서양이 여타 지역민들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만들었던 인종의 구획과 이에 기초한 인종주의가 오늘날 한국에 존재한다면 어떠할까. 오랫동안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던 사람들의 일상에 이러한 타자의 지배 논리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김정욱(고려대 연구교수·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