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계희] 물에 燈을 띄우는 건 좋지만
입력 2012-12-09 18:13
때 이른 폭설과 한파로 움츠린 어깨를 펼 수가 없어도 강원도 화천군민들은 겨울이 신난다. 인구 2만5000명이 안 되는 작은 군이지만 지역민들은 낙후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민한 끝에 ‘산천어축제’를 만들어 연간 150만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다. CNN이 겨울의 캐나다의 오로라, 스웨덴의 순록떼의 이동, 눈에 갇힌 런던 등과 더불어 영하 20도의 추위에 맨손으로 산천어를 잡는 축제를 소개해 더욱 유명해졌고,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축제로도 지정되었다.
지역마다 관광자원의 브랜드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축제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외부 방문객들을 유치하여 지역을 알리고 전통문화를 발굴 보급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제적 편익을 얻기 위해 개최된다. 해마다 전국적으로 2000개가 넘는 축제가 열린다. 화천 산천어축제 외에도 진주남강유등축제, 함평나비축제, 보령머드축제 등은 해외 방문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어 세계적 축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축제들이다.
서울이 진주 유등 베껴서야
이에 비해 축제를 마치 무슨 신장개업 이벤트쯤으로 생각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있는가 하면 지역 농특산물 판매를 위한 홍보관이나 장터로 착각하는 지역들도 많다. 2000여 개의 지역 축제 가운데는 남들이 하니까 무작정 벌이고 보자는 식의 따라하기축제가 부지기수다. 이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부족한 예산을 낭비할 뿐 아니라 지역주민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심지어 지역문화를 훼손하기까지 한다. 여기에다 근래에 들어서는 타 지역의 우수축제를 모방하는 짝퉁 브랜드까지 등장하고 있다.
서울시의 ‘등(燈) 축제’가 대표적이다. 이 축제에 많은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참가하여 즐기자 진주시민들의 반발이 있었다. 본래 등 축제는 경남 진주에서 해마다 10월에 열리는데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라는 오랜 역사를 발원지로 삼고 있다. 1592년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에서 3800여명의 병력으로 왜군 2만명을 대파한 것이 진주대첩이고, 이 때 성안에서 왜병과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성밖의 의병지원군이 풍등(風燈)을 하늘에 올리고 남강에 등을 띄워 도강하는 왜군을 저지하였다고 한다. 이후 남강에 등을 띄우고 즐기는 풍습은 1940년부터 개천예술제 형태로 맥을 이어왔으며 2002년 남강을 무대로 본격적인 유등축제를 개최하여 지난해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지정 받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애초 등 축제를 한시적으로 개최한다고 한 서울시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자 이를 서울시 축제로 정례화하겠다고 하여 진주유등축제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아무리 진주남강유등제가 전통이 있는 축제라 하더라도 서울시와 경쟁하면 이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서울시가 본래 취지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지역 문화에 대한 예의 필요
이처럼 관광상품이나 축제 브랜드들은 특성상 모방이 매우 쉽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신상품을 내었어도 주변에서 따라하는 순간 상품으로서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잃고 만다. 더욱이 축제 브랜드가 하루아침에 키워지는 것도 아니고 역사성과 지역성을 살려 브랜드화하는 일에는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들어갔는데도 아무런 지적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 이미 발전시킨 축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이 필요하다. 나아가 관계부처에서 지방축제보호에 관한 조례라도 만들어서 향후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화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대표축제가 세계축제로 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 아닌가.
이계희 경희대 교수 관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