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징용 피해자 편지 첫 공개] ‘사할린 판 쉰들러리스트’ 국가기록물로 영구 보존된다

입력 2012-12-09 23:51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 동원됐다 귀국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이 기재된 이른바 ‘사할린 판 쉰들러리스트’가 발견돼 처음으로 국가기록물로 인정받게 됐다. 이들이 고국의 가족들에게 보낸 처절한 육필 편지들도 정부의 공식 사료(史料)로 확정돼 영구 보존된다. 지금까지 사할린 강제동원에 대한 공적인 기록은 전무하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대일항쟁기위원회)는 지난 5년여 동안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인 고(故) 박노학씨 유족과 중국·러시아 이산가족회 등으로부터 입수한 편지 3000여통과 1만1000여명에 달하는 강제동원자 명부를 심층 분석, 피해자 판정에 쓰이는 심의조서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9일 밝혔다. 심의조서는 국가기록물로 지정된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 자료를 이달부터 2257건에 달하는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판정 불능 사건의 직권 재조사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할린 판 쉰들러리스트’ 어떻게 만들어졌나=대일항쟁기위원회가 입수한 자료는 박노학씨가 작성한 기록이 중심이다. 1956년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빠져나온 박씨는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보내오는 편지를 고국에 전달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주소와 가족관계 등 강제동원 피해자 6000여명의 신상정보를 기록한 ‘화태(樺太·가라후토·사할린 일본 명칭) 억류동포 귀환자 명부’를 만들었다. 명부는 사할린 강제동원 개개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박씨 자료를 바탕으로 중·러 이산가족회가 만든 3000여명의 개인 신상카드에는 이들이 언제 징용돼 어디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적혀있다.

위원회는 이 편지와 명부의 진정성에 주목했다. 우선 이 자료가 1945년 해방이후 사할린 피해자 1세대가 경과되지 않은 시점에 육필로 생산된 만큼 피해자 본인들의 강제동원 서면진술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냉전기 소련 당국의 검열을 거쳐 발송되는 국제우편에 자신이 남한 출신이라는 점을 밝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향 가족의 생사와 귀환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에서 사실과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보상 판정불능 비율은 일본 현지 강제동원보다 10배 이상 높다”며 “이번에 입수한 민간 자료가 판정불능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파악 위해 공식문서 입수 절실=정부는 아직까지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규모조차 공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 차원에서 일본과 러시아로부터 사할린 강제동원 자료를 전달받은 게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사할린에 모든 자료를 남겨두고 왔다는 핑계를 대고 있고, 러시아는 민간인 차원의 개별적 확인작업만 협조하고 있다. 대일항쟁기위원회는 피해보상 뿐만 아니라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사할린에 남아있는 러시아 자료 확보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정부가 1945년 이후 작성한 연금명부에는 사할린 피해자들의 이주 경위 등이 상세히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지난 4월 인도적 차원에서 협조할 의사를 내비쳤다”며 “지속적으로 러시아 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