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학이 본 새로운 G2] 앨런 칼슨 코넬대 교수 “美-中 당분간 G1 바통터치 없을 것”

입력 2012-12-09 17:16

미국 학계에서 중국 및 ‘중국의 국제관계’ 권위자로 꼽히는 앨런 칼슨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는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가 집권하더라도 중국 정치체제가 진정으로 개혁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30일 뉴욕주 이타카의 코넬대 캠퍼스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집권 2기에 들어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새 중국 지도부가 기존의 미·중 관계를 크게 변화시킬 유인도 적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동맹을 탄탄히 유지한 가운데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한국 대외 정책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 지도부의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중국의 새 지도부 출범과 관련, 향후 중국의 정치개혁 가능성에 대해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진핑 치하의 중국에서 정치개혁이 실행될 것으로 보나. 그리고 이 시점에서 이 문제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

“주요한 정치개혁이 시행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간단히 말해 시 총서기는 이러한 변화를 추진할 힘을 가진 것 같지 않으며 그가 이 문제에 어떤 관심이 있는지도 아주 불확실하다. 먼저 중국 정치국 상임위원회 구성을 보면 시진핑이 위원장이지만 그의 이 권력 핵심기구에 대한 장악은 아직 불완전하다. 두 번째로 시 총서기가 중국 정치지배층의 수장으로 부상한 것은 이러한 제도가 정한 규칙에 순응한 결과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자신을 출세시킨 제도 자체를 대폭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 총서기가 중국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될 것이란 증거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 전체는 부패와 지대(rent) 추구, 비효율이 만연한 정치시스템을 개혁하지 않고는 중국이 추가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어가기 어려운 결정적인 시점에 도달했다고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몇 달 안에 투명성과 예측가능성, 권력에 따른 책임을 높이는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시 총서기 등이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고 중국은 새 지도부가 전면에 등장했다. 이러한 양국의 변화는 미국과 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초기 상대방의 의도와 관심사에 대한 탐색기간이 지나고 나면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오바마가 재집권에 성공한 만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상대적으로 높은 연속성을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시 총서기와 동료 지도부는 그들의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할 다양한 국내 정치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단서가 있긴 하다. 아주 제한적인 가능성이긴 하지만 시 총서기가 중국 내부에서 나오는 강한 민족주의적 목소리에 동조해 미국과 아시아 등에 더욱 전투적인 태세를 취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양국 지도부가 두 나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운명이 같이 얽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갈등이 분출되더라도 해소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올 초 소위 ‘아시아로의 외교축 이동(pivot to Asia)’ 정책을 공식 선언했다. 중국 전문가 상당수는 이를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으로 여긴다. 미국은 향후 중국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아시아 중시 정책은 결코 봉쇄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중국에게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강력한 지위를 계속 유지할 것임을 알리는 동시에 역내 우방국들에게는 그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할 것임을 약속하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로버트 로스 보스턴대 교수가 최근 ‘포린 어페어즈’에 ‘외교축(pivot)’이란 표현이 중국 지도층의 의식구조와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 기반한 것이어서 미국의 이해에 매우 비생산적인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내 생각에도 중국인들은 ‘외교축’을 악의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으며, 미국 정책당국자들은 이러한 인식이 더욱 전투적인 중국의 행동을 유발시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과 북한 관계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중국은 핵 문제 등에 대해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한반도 상황이 더 불안정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중국이 북한의 결정, 특히 핵 무장과 미사일 실험에 대해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계획에서 알 수 있듯 매우 불확실하다. 미국의 일부에선 중국이 북한의 공세적이고 모험주의적인 정책을 충분히 제어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고 있다.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것은 중국의 대 북한 외교가 실패하는 게 의지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제어할 수단이 없기 때문인지다. 내 생각에는 수단이 없다는 후자가 맞는 것 같다.”

-미국은 쇠퇴기에 들어섰고, 중국이 초강대국(superpower)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우선 나는 미국이 반드시 쇠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 능력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외부적 요인보다 주로 내부적 요인에 의한 것인데, 2008∼2009년 금융위기의 영향은 아직도 미국 경제와 정치시스템을 흔들고 있다. 두 번째는 중국의 부상인데, 중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상당부분 변동시키고 있지만 지금은 물론 가까운 미래에 초강대국이 될 것 같지 않다. 그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해외에서는 인상적인 힘의 축적을 해 왔지만 동시에 커지는 내부 도전에 직면한 ‘역설적인 강대국’에 가깝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국력에 노출되어 있다. 수출의 25% 이상이 중국으로 갈 정도로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바람직한 대 중국 정책은 무엇인가.

“한국은 1990년대 초반에 주로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중국과 국교 정상화를 했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의 한국에 대한 의존보다 한국의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면서 대중 경제관계는 비대칭적(asymmetrical)이 됐다. 미국의 주요한 우방이면서 경제적으로 중국에 대해 의존이 높아지면서 한국의 대외 정책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단층은 북한 상황이 악화되거나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더욱 적대적으로 될수록 더욱 깊어질 수 있다. 내가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풍랑 거센 바다를 건너기 위해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시진핑 총서기 집권 이후에도 중국이 남중국해 등의 영토분쟁에 대해 강경노선을 지속할까.

“이를 예상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일부에서는 시 총서기가 후진타오 전 주석보다 더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거나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에 중국이 영토분쟁의 대응방식을 급격히 변화시킬 것 같지는 않다.”

■앨런 칼슨 교수는

앨런 칼슨(44) 코넬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 학계에서 손꼽히는 중국 및 중국 국제관계, 아시아 안보 분야의 전문가다. 2000년 예일대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저술한 ‘세계로 통합되는 ‘통일’ 중국:개혁 시기 중국의 주권 강화(스탠퍼드대 출판부)’에서 최근 초미의 관심사가 된 남중국해 영토 분쟁 등에서 표출되는 중국의 주권의식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그 전 해에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서재정 교수와 공동으로 저술한 ‘동아시아 안보에 대한 재고(Rethinking Security in East Asia)’에서도 한국·중국·일본과 동남아의 갈등 문제를 선구적으로 다뤘다. 2010년에는 중국 정치학 연구에 관련된 주요 이슈와 방법론에 대한 논문을 모은 ‘현대 중국 정치학(케임브리지대 출판부)’을 편집하기도 했다. ‘저널 오브 컨템퍼러리 차이나’, ‘퍼시픽 어페어즈’ 등 권위 있는 중국·아시아 관련 학계저널에 자주 논문을 싣고 있다.

뉴욕주 이타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