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한국경제 길을 묻다] 빚 갚기의 역설

입력 2012-12-09 16:48

‘자산 급매도→자산가격 폭락 →경기침체→물가 하락’ 도미노

고도성장을 거듭해오던 우리 경제가 대내외 악재에 잇따라 발목을 잡히면서 저성장 늪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본격적 부채감축(디레버리징)이 시작되면서 ‘자산 급매도→자산가격 폭락→경기침체→물가하락(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1990년대 일본이나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의 경기침체 과정을 답습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국은 2000년대 중반까지 주택가격상승률이 가계대출금리보다 월 평균 7.5% 포인트나 높았다. 이에 따라 빚을 내 집을 사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가계대출이 분기당 10.3%씩 늘어났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대출자들이 디레버리징에 나서면서 2008년 1분기부터 5년간 미국의 부채는 6.4% 하락했다. 자산가격도 2008년 한 해 동안 16.3%나 추락했다.

디레버리징 확산으로 개인파산자는 2007년 82만명에서 2010년 154만명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결국 민간소비가 급격히 하락하며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일본 역시 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이 붕괴된 이후 금융 분야 구조조정이 늦어지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우리 경제도 곳곳에서 디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민간 소비는 꽁꽁 얼어붙었다. 2003년 2.8%에서 2010년 7.1%까지 상승했던 민간소비 증가율은 금융위기, 유로존 재정위기 등이 겹치면서 올해 2.5%까지 급락할 전망이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다.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올 상반기 134%까지 올라서면서 소비 여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는 2011년 전년대비 3.7% 증가했지만 올 상반기에는 2.2%, 하반기에는 0.8%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은행의 기업예금 잔액 증가율은 2002년∼2008년 사이 대부분 한자리수에 그쳤지만 2009년 2분기 처음으로 27.8%를 기록하며 20%대에 진입한 뒤 지난해 말까지 지속적으로 두자리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은행에 쌓아두는 돈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주택자산의 상대적 규모가 크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디레버리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다만 “소비가 물가에 끼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낮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어 디플레이션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