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콩고 이동진료 현장을 가다] 약 한알이 곧 생명… 생애 첫 진료에 온 마을 ‘굿피플’ 잔치

입력 2012-12-09 16:21

콩고는 지금 망고의 계절이다. 지난달 28일 찾아간 무상구 마을은 골목마다 주렁주렁 달린 탐스러운 망고나무가 손님을 맞이했다. 하지만 풍요로운 광경은 여기까지다.

마을은 가난했다. 얼기설기 엮은 양철지붕에 돌 몇 개 얹어놓은 창고 같은 가옥들, 몇 개 안 되는 그릇을 흙탕물로 씻어내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길가 그늘에서 소일하는 주민들은 한없이 나른해 보였다. 하지만 굿피플의 이동진료 현장에 들어서자 상황은 반전됐다.

“이것 좀 보세요. 이빨들이 모두 움직여요.” 생전 처음 치과 진료를 받아본다는 말리키제마(53·여)씨가 검지로 누런 아랫니들을 피아노 건반 훑듯이 흔들어보였다. 왼쪽 다리를 저는 그레구아(41)씨는 “위가 있는 쪽이 계속 아프다”며 배 윗부분을 꾹 눌러보였다. 언제부터 아팠냐고 물으니 “6년 정도 됐다”는 얘기에 할 말을 잃었다.

내과진료 차량에 올라서자 내과의사 무안타씨 앞에 50대 여성 환자가 앉아 있었다. 환자가 “요즘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인다”고 하자 의사는 피를 뽑아 당뇨 증세 여부를 체크하고 혈압도 쟀다. 말라리아 검사도 이어졌다. 무안타는 “혈압을 조심하라”며 정성껏 처방전을 써줬다.

진료차량 앞 나무 그늘 아래 펼쳐진 좌판은 노상약국이었다. 말라리아약과 장티푸스약, 혈압약, 위장약, 복통약, 구충제, 멀티비타민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DR콩고 보건부 산하 응급재난팀 소속 약사인 따글로스 칼랄라씨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말라리아 약 처방이 가장 많다”며 “아마 오늘 환자 중 절반 이상은 말라리아 약을 타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동네에 말라리아 환자는 왜 그렇게 많을까. 구릉지대에 위치한 무상구 마을은 8년 전 집값(임대료)이 비싼 도시를 떠나온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생겨난 동네다. 갑자기 생긴 마을에 공동우물은 마을 꼭대기에 단 한 곳뿐. 잘 씻지 못하는 여건인데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은 말라리아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아파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주민들 대부분은 병원에 갈 돈은커녕 약 살 돈조차 없다. 돈이 있더라도 킨샤사 시내 병원까지 가는 데만 몇 시간씩 걸리는 대표적인 의료 사각지대다.

굿피플 콩고 킨샤사지역 지부장인 이도항 선교사는 “이번에 시작한 이동진료만으로도 지역 주민들의 의료 사각지대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취약계층인 빈민과 장애인, 영·유아와 산모들의 정기적인 보건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굿피플은 인적·물적 지원 등을 통해 콩고 현지의 이동진료사업 및 질병예방교육 전 과정을 총괄한다. 궁극적으로는 DR콩고 현지 의료진들이 직접 이동진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자립을 돕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적도를 지나는 뙤약볕이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주민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진료차량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X레이를 찍어보고 싶다며 달려온 필로멘(52·여)씨, 뇌졸중으로 왼쪽 팔다리가 쉼없이 떨리는 무안가시모(53)씨…. 이들 모두는 와졸라 엄마처럼 사랑하는 자녀들을 한두 명씩 떠나보내야 했던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산다. 말라리아 약값 1200원이 없어서.

첫 발을 내디딘 굿피플의 이동진료는 가난과 내전, 질병으로 상처받은 콩고인들의 마음에 ‘굿피플(좋은 사람들)’로 다가서겠다는 겸손한 프러포즈 같았다. 무상구 마을을 내려오는 길, 동구 밖 망고나무에 매달린 열매의 풍성함이 콩고의 미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정기후원 문의 : 1577-3034

△ARS 후원 : 060-707-1544 (1통화 1만원)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5-502-112974 (굿피플인터내셔널)


킨샤사(콩고)=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