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눔-인체조직 기증] 내 생명 나눠 생명 구하는 기쁨… 인체조직 기증·서약 실천한 사람들

입력 2012-12-09 15:53

장기에 속하지 않는 뼈, 연골, 피부, 근막, 인대 및 건, 심장판막, 양막, 각막 등 인체 조직을 사후에 기증하면 각종 장애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소중하게 쓰인다. 인체조직 기증은 우리 삶이 다한 후 마지막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나눔이며 고귀한 인간애의 실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사회 전반의 거부감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기증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일보는 창간특집의 일환으로 국내 열악한 인체조직 기증의 실태를 보도하고, 새해에 인체조직 기증 활성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방법 등을 모색하는 기획 시리즈를 내보낼 계획이다.

“우리는 호흡이 끊어지면 어차피 한줌의 재나 흙으로 돌아갈 존재다. 우리나라에는 죽은 사람의 육체가 훼손되는 것을 용납 못하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대신 100여명에게 새로운 삶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뜻 깊은 선물이 될까. 죽음이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다. 어차피 나중에 썩어버릴 육신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생명의 향기가 될 수 있다면 참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한다. 용기있는 결심이 누군가의 삶을 희망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송미경(47)씨가 최근 펴낸 책 ‘천사 의사 박준철(맥스미디어)’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박준철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이다. 외과 의사였던 박씨는 지난해 10월 근무 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그리고 그의 뼈와 연골, 피부, 심장판막, 각막, 혈관 등은 최대 150명의 환자에게 이식돼 새 삶을 선물했다. 박씨는 국내에서 인체조직 기증을 실천한 최초의 전문의로 기록됐다.

박씨는 평소에도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살았다. 국제의료구호단체 ‘머시 십(Mercy Ship)’의 병원선을 타고 아프리카 오지를 찾아다니며 의료 봉사에 헌신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마지막 가는 길에 누군지 모를 환자들을 위해 온 몸을 다 주고 떠난 것이다. 송씨는 최근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평소 남편과 ‘나중에 죽으면 장기나 인체 조직 기증을 하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주저않고 인체조직 기증을 승락했다”면서 “남편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씨 또한 지난 8월말 남편의 숭고한 뜻을 이어 사후 인체조직 기증 희망 등록을 했다. “사실 장기나 시신 기증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인체조직 기증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어요. 나 뿐 아니라 인체조직 기증이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습니다. 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 좋겠네요.”

2001년 가족이 함께 호주로 이민 간 황베드로(55), 우미숙(48)씨 부부는 1년 전 이맘때 하나뿐인 아들 황지권(18)군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호주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한국 여행을 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

아버지 황씨는 처음엔 장기 기증을 생각했지만 장기 손상이 심해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인체조직 기증을 선택했다. 어머니 우씨는 “아들의 몸 일부를 받아 누군가 건강해지고 제2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황씨는 “호주는 운전면허증에 장기와 인체조직 기증 여부가 표시돼 있을 정도로 기증 문화가 형성돼 있다. 한국도 종교인이나 의료인, 사회지도층이 기증 문화 정착에 앞장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비 의사인 송승우(24·연세대 원주의대), 이정선(23·여·관동대 의대)씨 커플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연합(의대협)이 지난해부터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펼치고 있는 생명 나눔 릴레이를 통해 사후 인체조직 기증을 약속했다. 이 단체 사회협력국장을 맡고있는 송승우씨는 2009년 장기와 조혈모세포(골수) 기증 서약까지 한 상태다. 의대협은 지난 10월까지 전국 의대생 498명으로부터 인체조직 기증 희망 등록을 받았다.

의대협의 조사결과 의대생 75%는 인체 기증을 할 의향이 있지만 45%는 ‘시신 훼손’ 등 이유로 가족의 기증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황영호(53·봉천동 보배비전교회) 목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체조직 기증 홍보대사’다. 성형외과 개업의이기도 한 그는 진료나 목회 중 인체조직 기증 설파에 누구보다 열성적이다. 올초 인체조직 기증 등록을 한 황 목사는 지금까지 가족과 교인, 지인 등 10여명의 희망 서약을 이끌어냈다. 황 목사는 “자기 생명이 귀중한 만큼 타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면 인체 조직 기증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고 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