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곁에 있다] 빛을 잃은 그들, 희망의 빛을 보다… 기업 전공 살린 ‘프로보노’로 사회공헌

입력 2012-12-09 15:35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던 지난 1월, 공윤선(15)양은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그곳에서 공양은 바다 소리를 들었고 하얀 눈의 찬 기운을 느꼈고 양떼의 보드라운 털을 만졌다. 그리고 듣고 느끼고 만진 것을 사진에 담았다. 공양은 뷰 파인더를 통해 피사체와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마음의 눈으로 사진을 찍었다. 공양은 시각 장애 1급이다. 사물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全盲)이다. 공양의 사진은 2개월 뒤 서울 청담동 유아트스페이스에서 일주일간 전시됐다. 전시회 이름은 ‘인사이트(insight)’. 전시회장은 공양을 비롯한 11명의 한빛맹학교 학생들이 사진작가 강영호씨와 함께 2박3일간 제주에서 찍은 사진으로 꾸며졌다.

공양은 “새들의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바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카메라 렌즈를 돌렸다”면서 “내가 사진을 찍으면 동행한 자원봉사자 언니가 사진에 대해 설명해 줬다”고 말했다.

공양에게 사진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준 것은 삼성전자와 제일기획이었다. 삼성전자는 카메라는 물론 출사와 전시회에 필요한 운영비를 제공했고, 제일기획은 모든 진행과정을 기획했다.

◇기업, 프로보노에 눈을 뜨다=김치 담그기, 연탄 배달하기…. 겨울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다. 최근 여기에 기업들이 새로운 기부 형태를 더했다. 프로보노다.

프로보노란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줄임말로 원래 법조계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이나 단체에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요즘은 기업이 재능 기부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돼 사용되고 있다. 말 그대로 업(業)의 특성을 살린 사회공헌 활동이다.

삼성전자가 한빛맹학교 학생들에게 카메라를 제공한 것도 일종의 프로보노다. 삼성전자는 전시회 사진을 자사 스마트TV 속 애플리케이션에 담았다. TV에서 앱을 본 사람들이 한빛맹학교에 기부할 수도 있게 했다. 삼성전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간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시회로 모인 800만원의 기부금을 한빛맹학교에 전달했다.

농심도 식품 생산이라는 ‘전공’을 살리고 있다. 결식 계층에 대한 음식 지원 등에 직접 나섰다. 2008년부터 시작한 ‘사랑 나눔 맛차’는 차량에 라면과 음료, 스낵 등 농심의 제품을 싣고 전국의 지역아동센터와 보육시설을 방문하는 행사다. 올해는 암을 앓고 있는 어린 환자들을 찾아가 작은 음악회도 열었다. 농심은 2006년부터 푸드뱅크 지원사업에도 참여했다.

유가공업체들은 특수 질환 어린이와 유아를 위한 분유를 만들고 있다. 매일유업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선천성 대사이상 환아들을 위한 특수 분유를 1999년부터 연구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남양유업도 특수 질환에 시달리는 환아를 위한 분유를 개발, 보급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기부 활동에 적극적이다.

SK텔레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행복한 소셜기부’를 진행했다. SK텔레콤 SNS채널에 등록해 댓글을 달면 SK텔레콤이 1건당 1000원씩 기부하는 것이다. 올해 2만여명이 참여해 기부금 2000만원을 모았고, 기부금은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 수술, 중국 쓰촨성 백혈병 어린이 선물 등에 쓰였다. KT는 자사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주머니’를 활용해 기부를 유도하고 있다.

◇기부도 아이템이다=공공의 이익을 마케팅과 연계한 시초는 1983년 ‘자유의 여신상’ 복구에 나섰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다. 가입자가 자사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것이었다.

기업에게 프로보노는 회사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아이템 선정이 중요하다. 아이템이 회사의 특성과 잘 맞는지 확인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활동이라면 지양해야 한다. 비용 문제도 간과해선 안 된다.

SPC 행복한 재단의 유승권 사무국장은 “삼성 등 대기업은 재단과 기업 내 사회공헌팀이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재단은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가능하지만 사회공헌팀의 활동은 호흡이 짧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파리바게뜨, 파리크라상 등 식품전문업체인 SPC그룹은 제빵 기술로 새로운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 초 별도법인으로 설립한 행복한 재단은 3∼5년의 장기 프로젝트로 장애인 직업 재활을 위한 제빵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그룹 내 사회공헌팀은 매월 넷째주 그룹 소속 제빵사들과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아이들과 함께 케이크를 만들어 생일 파티를 해 주고 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