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자라 가난과 분노로 얼룩진 삶을 살아온 고(故)김우수씨. 월급 70만원의 중국집 배달부 김씨는 어린이재단을 통해 알게 된 5명의 불우 어린이를 5년 동안 후원하며 ‘나눔을 통해 삶의 행복을 찾았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그 행복을 이어가지 못하고, 지난해 9월 배달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야기는 영화 ‘철가방 우수씨’로 태어났다.
‘나눔은 돈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다’라는 김씨의 말처럼 가난을 장애물로 여기지 않고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12년째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는 한윤학(59)씨. 한씨는 기부하기보다는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에 뇌졸중을 앓아 오른쪽 눈을 실명했고, 왼 팔과 다리는 마비됐다. 정부 보조금 월 23만원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한씨는 그러나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도 있을 것”이라며 보조금 일부를 쪼개 기부하고 있다.
한씨는 매월 20일 정부 보조금이 나오면 가장 먼저 2만원을 봉투에 담아 길을 나선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서울 하계동 그의 집에서 서울 옥인동 아름다운재단까지는 2시간30분 이상 걸린다. 그러나 한씨는 “온라인으로 돈만 부치면 아쉽지 않으냐”며 “기부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소식도 듣고, 좋은 분들이 기부하셨다는 기쁜 이야기도 들으려고 재단에 직접 간다”고 말했다.
그는 “다 잃고 나니 오히려 나눌 마음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1976년 한씨의 아내는 7살이던 딸 정순씨와 한씨를 남기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방황하던 그는 1980년 중동에 건설 바람이 불 때 ‘악착같이 돈이라도 벌자’며 사우디로 갔다. 2년 동안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돌아와서는 고속버스 운전을 했다. 임금이 가장 비싼 서울∼부산 간 노선을 운전하겠다고 자청했다. 다른 동료들보다 배로 일했다. 업무과중에 스트레스가 심해 하루에 3∼4갑 줄담배를 피워댔다.
1984년 3월 어느 날, 운행을 마치고 부산 한 여관에 몸을 누인 한씨는 소변이 급해 새벽에 눈을 떴다. 순간 몸이 평소와 다른 것을 느꼈다. 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과로로 인해 뇌졸중이 온 것이다.
잠자던 중 찾아온 병이어서 산재 처리도 못 받고, 벌어놓은 돈은 모두 치료비로 들어갔다. 홀어머니가 있는 고향 강원도 인제로 내려갔다. 1년여 병원 신세를 진 뒤 겨우 목발을 짚고 일어설 수 있게 됐지만, 살 길은 막막했다. 몸이 불편한 그에겐 공사판의 막노동도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삯바느질이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한씨는 “한때 세상을 포기하려고도 했다”고 말했다. 목숨을 끊으려고 뒷산으로 여러 번 올라갔다. 바위 밑으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딸의 얼굴이 눈에 밟혀 도저히 뛰어 내릴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딸은 시집을 가면서 1995년 한씨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됐다. 지원금을 아끼면 자신의 한 몸은 건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삶은 여전히 불행하게 느껴졌다. 그랬던 그는 2000년 8월, 우연히 TV에서 울산 노점상 박음전의 나눔 사연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바닷바람 거친 항구 앞에서 떡볶이와 커피를 팔아 번 돈으로 금을 모아 기부한다는 박씨를 보고 한씨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매일 내 처지를 비관했는데, 가만히 보니 나는 정부에서 주는 돈 받고 편안하게 살고 있더라”며 “뭐에 홀린 듯 TV화면에 뜬 아름다운재단 전화번호를 보고 바로 연락해 기부자로 등록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나 같이 볼품없고, 가난한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뻐서 기부한 첫날 잠을 못 이뤘다”고 말했다. 한씨의 월 기부금액은 2만원. 그에겐 월수입의 10%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그러나 한씨는 “기부금이 적어 항상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독려하다 보면 나보다 10배∼20배 돈을 버는 사람들이 수입의 1%를 내놓는 것도 어려워한다”며 “사람들이 하루빨리 돈보다 더 소중한 나눔의 행복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돈이 많고 건강했다면 도움과 나눔의 절실함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12년째 아름다운재단에 기부 한윤학씨 “다 잃고서 깨달은 나눔”
입력 2012-12-09 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