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아내 살해’의사 징역 20년… 한국판 오제이 심슨 사건 4번째 재판서도 단죄

입력 2012-12-07 18:43

임신 9개월의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의사 백모(32)씨가 네 번째 재판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윤성원)는 7일 백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백씨와 검찰의 항고를 모두 기각하고 1·2심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해 출산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아내를 살해하고, 결국 그 태아까지 숨지게 한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며 “유족들에게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음에도 진정한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백씨는 지난해 1월 만삭이었던 부인 박모(당시 29세)씨를 다툼 끝에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백씨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고, 간접적인 증거와 정황만 있을 뿐이었다.

반전은 지난 6월 발생했다.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1, 2심과 달리 ‘사망원인에 대해 치밀하게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목이 졸려 사망했는지, 피해자의 다른 상처들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살해한 동기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원심의 판단에 의심을 품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쟁점들을 상세히 설명하며 다시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목 부위에 난 상처가 액사(손으로 목을 눌러 질식사)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목 부위 상처가 사체 운반 과정에서 생긴 것일 수 있다’는 대법원의 지적에 “숨진 후에 생긴 상처라면 붉은색의 출혈을 동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욕조에 넘어져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목에 상처가 났을 수 있다’는 의구심에 대해서도 “상처가 날 정도의 몸부림이었다면 박씨 시신이 발견된 형태처럼 이상한 자세로 숨졌을 리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목 이외에 피해자의 머리 등에 난 상처와 관련, “욕조에 넘어져 실신하는 과정에서 머리에 5군데 이상의 상처가 한꺼번에 발생하기는 어렵다”며 백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살인 동기에 대해서도 “(전공의 시험 스트레스가) 다툼의 계기가 돼 우발적으로 살해한 경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백씨와 피해자의 옷, 침대 이불 등에서 발견된 혈흔은 다툼의 흔적으로 보이고, 백씨는 사건 이후 당일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의문스런 행동을 보였다”며 “이런 정황들을 종합하면 백씨 외의 제3자에 의한 범행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2년 동안 네 번의 재판을 거친 피해자 유족들은 선고 직후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며 “사법부와 검찰, 경찰이 사건의 가려진 진실을 밝혀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던 백씨는 이날 다시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함에 따라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되돌아갔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