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되든 정부조직개편] “내자리 어떻게 되나” 후보 입만 바라본다
입력 2012-12-07 18:26
대선을 앞둔 공직사회는 말수를 줄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입만 쳐다보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부 조직개편이라는 화두가 불거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도중에 말을 끊기 어려울 정도다. 할 말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세종시 변수도 있다. 조직개편에 따라 세종시 이주 여부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세종시로 옮겨가는 부처 중 일부가 분리되면 서울에 남을 수도 있고, 서울에 남기로 했던 조직 일부가 다른 부처와 통합되면 세종시로 옮겨갈 수도 있다.
◇“조직개편 반대” 목소리 커진다=목청이 큰 곳은 기능·조직 축소가 예정된 부처들이다. 정보통신 분야 분리가 거론되는 지식경제부, 해양수산부 부활이 언급되는 국토해양부, 과학기술부 재분리가 거론되는 교육과학기술부 등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7일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런 분야는 성과가 중장기적으로 나타난다”며 “정보통신(IT) 분야는 융합 성격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도 만들었고, 이제 겨우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국토부의 한 고위공직자는 “통합해 업무를 해보니 시너지 효과가 있다”며 “항만개발만 해도 어차피 주변 철도와 도로, 도시계획까지 바꿔야 하는데 통합적으로 하면 효율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해양수산부와 통합한) 현재 구조가 국민 편의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독일과 러시아 같은 과학 강국들은 과학기술과 교육이 합쳐져 있다”며 “연구가 교육과 합쳐지면서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등에서도 수학 과학 쪽은 보다 체계화된 교육이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과학 쪽에서 15년, 교육 쪽에서 5년을 일했다는 교과부의 다른 공무원도 “두 부처 융합의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며 “과학에서 못했던 일들을 교육과 합쳐지면서 해낸 경우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소리없이 웃는 부처도 있다=책임총리제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총리실 공무원들의 목소리에서는 퍽 자신감이 넘친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정책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조직을 갖고 와야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첨예한 각 부처의 다툼을 조정하기 위해선 일선 부처를 휘어잡아야 하는 만큼 각 부처의 정원관리 등 공무원 조직에 대한 운용권을 총리실에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옛 해양수산부나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출신 공무원들도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명칭과 기능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유력 후보 모두 이들 부문의 조직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덕분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기능이 축소되면서 다른 부처에 통합된 후 “홀대받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수월성 위주인 과학기술 파트에서 보면 형평성이 강조되는 교육 파트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국민 입장에서 보다 장기적인 검토와 준비 필요”=이해관계에 따라 세부 의견은 엇갈리지만 공무원들은 공통적으로 5년마다 반복되는 개편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부처 수를 줄이거나 정부조직을 슬림화하겠다는 걸 과시하는 목적으로 추진하면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경부의 한 공무원은 “정부 조직이 개편되면 새로운 부처 조직을 제대로 세우는 데 1년이 걸리고 마지막 5년차에는 정권 말기라 다음 정부 조직개편에 대비하다 1년이 간다”며 “5년 임기 중 제대로 일하는 건 3년 남짓”이라고 설명했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조직이 바뀌면 적응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데 이렇게 되면 대국민서비스가 부실해지고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개편 방식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선을 전후해 국민에게 보여주기식 개편을 하거나 이익단체의 힘에 이끌려 개편이 진행되어서는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한 정부 조직을 만들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10년에 걸친 준비기간 끝에 2001년 1부 22성청(省廳)을 1부 12성청으로 축소한 일본이나 수십 년간 정권이 바뀌어도 신설 부처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미국 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은 2001년 정부 부문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정부 조직을 개편했다. 예산·세제·금융 등 경제정책 권한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 대장성은 예산과 세제만 맡는 재무성으로 축소됐고 금융은 금융청으로 넘어갔다.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은 문부과학성으로 통폐합됐다.
전통적으로 대부처주의 형태인 미국의 연방정부 조직은 1960년대 이후 큰 변화가 없다. 15개 중앙부처 중 지난 50여년간 신설된 곳은 5개에 불과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2002년에 국토안보부가 설치된 것은 1988년 보훈부 신설 이후 14년만의 일이었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정부조직법 자체가 뒤죽박죽인 상태여서 손을 보긴 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1990년대 이후 우리의 정부 조직개편은 효율성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 따른 것이어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역·계층의 이해관계가 아닌 전체 국민을 위한 조직개편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부처를 신설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검토와 계획을 먼저 한 뒤에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직개편 논란은 2월까지 현재진행형=대통령 후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은 대선이 끝난 후에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후보들의 공약에 각 부처 의견을 반영시키려는 노력이 1라운드였다면,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정부 조직 개편안을 확정할 때까지의 논의 과정은 2라운드다. 5년 전에도 당시 인수위와 통폐합 대상 부처 간 로비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어떻게 보면 진짜 본선은 대선 이후다. 인수위 논의 과정에서 지금까지 공개된 조직개편 윤곽이 바뀔 여지가 있는데다 부처의 신설·분리라는 총론 외에도 각 부처의 정책과 기능별 각론으로 들어가면 조정해야 할 문제는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특정 업무, 특정 산하단체의 유무에 따라 부처의 파워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이를 지키기 위한 전략도 본격화된다. 조직개편안이 확정될 때까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공무원들의 물밑 논리전은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부처종합=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