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우리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입력 2012-12-07 17:54
‘팡세’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풍요 가운데 살고 있는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입술로는 “아기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우리는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고백하지만 마음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음을 꿰뚫어 보았던 그리스도교의 지성이었다.
2012년 대림절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들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역사에 참여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가? 어느 때부터인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마음도 세상적인 것들이 차지해 기다림의 자리를 내어 주어버리지 않았는지 묻게 된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은 특별하다고 여겨진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누가가 전해주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는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황제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세계지배에 필요한 자금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령에 인구조사령을 내렸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로마가 내걸었던 평화가 얼마나 거짓된 평화였으며 약소민족의 착취와 억압으로 이어졌던가를 잘 알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도 평화를 가장하는 제국들의 거짓된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팍스아메리카와 팍스차이나가 주장하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위험한 평화인가를 우리가 꿰뚫어보고 경계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같은 맥락에서 12월 19일에 실시되는 대선을 앞두고 팍스코리아를 외치고 등장하고 있는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깨어 있는 눈으로 관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누가는 세상이 약속하는 거짓평화에 대해 아기 예수의 탄생이야말로 이 세상을 구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기쁜 소식이요 ‘진정한 평화(pax christi)’임을 증거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진정한 평화는 지극히 비천한 한 여인의 몸을 통해 탄생하는 아기예수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누가는 마리아의 찬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눅 1:51∼52)를 힘 있게 외치고 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의 메시지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역사에 일으키시는 진정한 혁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끊임없는 공약(空約)을 남발하면서 복지와 평화를 약속하는 대선 주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국사 속에 맥맥이 흐르고 있는 메시아의 전통을 떠올리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들을 통해 상대적으로나마 실현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민족의 바벨론 포로 시기였던 일제치하에서 역사교사로 일했던 함석헌옹은 젊은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치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관찰한 5000년 한국역사는 고난과 수치로 점철된 역사였다. 그리스도교의 지성이었던 그는 이사야서 53장의 ‘고난의 종’에 대한 말씀을 읽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한민족에게 세계사의 고난의 짐을 지우심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쓰임 받게 하는 메시아적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실의와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호소했다.
필자가 한민족역사가 세계사 속에서 차지하는 메시아적 사명을 강조하는 것은 팍스코리아나를 외치는 후보자들이 고난으로 점철된 한국역사가 세계사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메시아적 의미를 깨달아 세계사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의 미래를 선도해가는 비전을 가진 자들이어야 한다는 작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이 약속하는 공약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깨닫고 진정한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증거하고 실현하는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2012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물어야 할 것은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오시는 아기 예수를 맞이할 참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우리 마음속에 가득 찬 죄와 탐욕을 몰아내고 겸손한 말구유들이 되어 오시는 아기 예수를 온전히 영접하는 복된 성탄이 되길 바란다.
<목포예원교회목사·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상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