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의 해피 하우스] 하버드대 교수들의 고민

입력 2012-12-07 17:54


“배운 것들이 왜 그래. 배운 것들은 뭐가 다를 줄 알았는데… 배운 것들이 더해.”

패륜적인 성형외과의사 남편의 배신으로 비통해하는 딸의 어머니가 울부짖는 외침이다. 최근 뇌물, 성추문, 브로커 검사 등 잇단 비리와 ‘검란(檢亂)’으로 검찰총장이 물러나는 날 또다시 검사비리가 터지자 온 국민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물론 극소수이겠지만, 악덕의사와 검사들로 상징되는 도덕적 붕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 최우수 성적의 학생들이 입학해 교육받는 의대, 법대 출신들이 이토록 엄청난 나쁜 짓을 하는가. 우리 교육의 무엇이 문제인가.

1981년 어느 날 하버드대 교수회의는 매우 침통했다. 졸업생들 중에 환자보다 돈만 아는 악덕 의사, 연구를 날조하는 악덕 과학자, 불의와 비리를 일삼는 악덕 법조인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

당시 하버드대 교수들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에 가장 우수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윤리적으로 바른 교육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직면한 것이다. 교수회는 ‘윤리도덕’에 관한 몇 가지 과목을 개설하고, 그중에 한 과목을 졸업필수로 반드시 이수하도록 결의하였다. 그래서 1982년 콕스(Harvey Cox) 교수의 ‘예수와 윤리적 삶’ 강의가 시작된다. 이 과목은 매년 700∼800명씩이 수강하는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과목의 개설을 요청받은 콕스 교수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윤리도덕이 교회와 가정에서 그리고 대학생보다는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그는 차선으로 이 과목을 개설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 대학들도 이런 몸부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의 윤리도덕 교육은 차선이지 최선은 아니다. 윤리도덕은 풀검(Robert Fulghum)의 저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처럼 생각보다 일찍 어린시절에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계속 다시 배우게 된다. 물론 그때 배운 것이 말 그대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 배운 기본적인 것을 체득하지 못했다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대로 그것을 체득하면 인생의 튼튼한 토대를 쌓은 셈이다.” 풀검의 말이다.

그런데 심리학은 풀검의 생각보다 더 일찍 윤리도덕이 형성된다고 본다. 초자아(super ego)의 두 요소 ‘자아이상’과 ‘윤리도덕’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형성되기 때문이다. 양육자의 칭찬이 ‘자아이상’을, 징벌이 ‘윤리도덕’의 기초이다. 예를 들어 낮잠을 자고 나서 자아이상이 높아야 “아! 잘 잤다” 기지개를 펴는데, 윤리도덕이 너무 높으면 “아! 나는 죽어야 돼. 또 낮잠을 잤네”라며 자기를 징벌한다. 그래서 양육자가 주는 이상적인 상벌(칭찬과 징계), 즉 가트맨 비율이 ‘5:1’이다.

오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이것이다. ‘5:1’이지 ‘5:0’이 아니란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칭찬(5)을 강조하다보니, 징계(1)에 무심했다. 공부만 잘하면 부도덕하고 반사회적 행동에 관대했다. 이 아이들이 의사가 되고, 검사가 된 셈이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 23:13∼14)

물론 양육자의 화풀이를 합리화하는 말씀이 아니다. 자녀들의 부도덕과 반사회적인 행동은 채찍을 해서라도 가르쳐야 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말씀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윤리도덕 교육은 학교보다 근본적으로 양육자의 책임이며 사명이다.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