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나의 선생님 피에르 마라발

입력 2012-12-07 18:01

학창시절 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조르듯 기도했다. 그래서일까, 나와 연이 닿았던 몇 분의 선생님들은 각기 특유한 학풍과 개성으로 내 학문의 길에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셨다. 그 중 한 분이 파리 소르본 대학의 명예교수인 피에르 마라발(Pierre Maraval) 박사이다. 선생님은 평소 ‘예’는 ‘예’, ‘아니요’는 ‘아니요’라고 복음에 입각해(마 5:37) 엄밀한 사실판단을 하는 분이었다. 그 분의 말씀 중 특히 몇 마디는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좋은 선생님 만나게…” 기도

논문을 시작하면서 개요를 보여드리자 나에게 돌아온 답은 “새로운 게 아무것도 없다”는 냉정한 한마디였다. 웃는 얼굴에 편안한 어투였지만 그 소름 돋는 명확함은 사형선고 같은 절망감으로 나를 압박했다. 나는 당황할 여유나 한 치 망설일 틈조차 없이 논문개요를 찢어 송두리째 쓰레기통에 내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공부하기를 1년, 새로 보내드린 내용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짤막한 답을 얻었다. OK!이렇게 하여 오늘까지 선생님과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부터 모셔 강연을 듣고자 계획했는데 드디어 지난주 선생님은 만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서울에 그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나는 그분이 묵고 있던 호텔을 드나들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에 머무를 때는 어김없이 자리에 앉아 복사자료를 보면서 계속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차도 8시간이나 나고 여독도 있을 텐데 쉬지 않으시고 계속 연구만 하시냐”고 했더니 선생님은 웃으면서 “책을 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네”라고 하셨다. 심지어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자료를 양손으로 들고 서서 읽기도 하지. 때론 서서 졸기도 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 나이 마흔 여섯으로 아직 싱싱한 편이지만 미주나 유럽 국제선 항공기를 타면 며칠은 널부러지는데 연로하신 선생님은 서울 도착 하루 만에 고3 수험생인 양 졸음을 쫓기 위해 서서 책을 읽으시다니…. 이로써 선생님의 불가사의한 능력, 최근 거의 1년에 한 권씩 300∼500쪽의 단행본을 출판하는 수수께끼가 풀렸다.

피에르 마라발 선생님은 교회사 연구에 뜻을 두다가 서른다섯이 돼서야 결혼했다. 이 정도라면 학문과의 결혼이 첫 번째 결혼이고 한 여인과의 결혼이 두 번째 결혼이라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과 함께 초대했던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의 크리스천 라슐레(Christian Raschle) 교수도 비슷한 케이스다. 나는 그를 프랑스식으로 ‘크리스티앙’이라고 부른다. 크리스티앙은 학문에 몰두하느라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고 내가 통역한 어떤 교회의 청년부 설교에서 고백했다. 그의 열정은 가족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가장(家長)인 자신의 이름은 크리스천(Christian), 부인은 모세의 누이를 본 딴 미리암(Miriam), 큰아들은 요한, 둘째는 시몬, 거기에다가 크리스천의 남동생은 천사의 이름에서 빌려 온 미가엘 등, 신구약은 물론 천상의 좋은 이름까지도 죄다 가져다가 썼다. 학문만큼이나 신앙에서도 선한 욕심이 많은 벗이다.

그런데 나의 학문적 관심과 마라발 선생님의 연구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크리스티앙은 “성현, 넌 마라발 교수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어”라는 말을 남기며 이번 주 초 서울을 떠났다. 그의 평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운을 진동처럼 내게 남겨 놓았다. 내가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 무엇인가. 선생님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4세기 수도적 삶을 연구한 학자답게 마라발 선생님은 사막 교부의 방법론으로 나를 가르치신 것 같다. 사막의 구도자들은 물어보기 전에 먼저 말하거나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한 형제가 원로를 찾아가서 한 말씀 청하자 원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상대방이 질문하기 전에는 먼저 말을 꺼내지 마시오.” 이 말에 제자는 “실로 저는 많은 책을 읽어 보았지만, 이런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떠나갔다.

강요한 적이 없는 선생님

선생님은 내가 물어보아야 답을 주고 내가 글을 써 보내는 한에서만 글로써 응답했다. 오랜 기간 선생님이 내겐 보낸 거의 모든 이메일과 편지를 나는 지금껏 보존하여 갖고 있지만, 그분이 먼저 내게 이래라 저래라 내 연구에 관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번 서울 방문 중, 여든을 바라보는 프랑스 스승은 “나는 단 한 번도 자네에게 무얼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네. 그렇지 않은가”라고 크리스티앙 앞에서 당신 가르침의 방식을 한국인 제자에게 확인하려 했다. 나는 “그렇습니다(oui, c’est vrai)”라고 또렷이 대답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자네에게 무얼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네. 그렇지 않은가.” 서울을 떠나기 전 선생님이 이렇게 주신 말씀은, 4세기 사막의 원로가 제자에게 남겨 준 마지막 금언처럼, 마치 거대한 역사의 사막 속에 이제 나 홀로 새로이 던져져 있는 듯한 환상과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영신학대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