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덕송교회] 다리 세 번 건너야 오는 교회 어떻게 오냐고? 하나님께서 힘 써주시니까
입력 2012-12-07 18:02
해발 300m가 넘는 강원도 산골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42번 국도를 따라가면 웅장하게 뻗어 있는 산세가 아찔하다. 왕복 2차선 도로 너머로 보이는 까마득한 계곡에선 칼바람이 불어온다. 동강 상류인 조양강의 수려한 경관에 한동안 시선을 뺏기다보면 빨갛게 녹슨 십자가 탑이 솟아 있는 한적한 산골마을에 도착한다.
41년 된 교회에 성도는 2명뿐
교회가 있는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덕송2리에는 송오리마을과 다래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20여가구, 40여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 70대 이상이다. 혼자 사는 어르신도 적지 않다.
교회에 꾸준히 나오는 성도는 2명뿐. 그중 이송자(55·여) 권사는 차를 타고 다리를 세 번 건넌 뒤 가파른 숲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정선군 북평면 문곡리 산속에 살고 있다. 산길이 험해 이 권사의 집 앞까지 차는 갈 수 없다. 교회에서 이 권사의 집까지는 걸어서 2시간 넘게 걸린다. 이런 이유로 변영민(34) 목사는 주일마다 차가 올라갈 수 있는 산 중턱까지 교회 승합차를 몰고 가서 이 권사가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올해 고구마가 잘 안 됐어요. 짐승들이 다 뜯어먹어서.”
지난달 23일 만난 이 권사는 “산길 오르느라 고생했다”면서 광주리에 고구마를 가득 내왔다. 남편과 함께 잡곡,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 권사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시부모의 영향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이 권사는 “항상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니까 살아가는 거 아니겠느냐”며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라는 성경 말씀을 늘 가슴 속에 품고 있다”고 말했다.
이 권사의 시부모는 어렵게 얻은 아기가 갑작스레 세상을 뜨는 일이 이어지자 교회에 다니라는 마을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이후 처음 얻은 아들이 바로 이 권사의 남편 안중열(60)씨였고 이후 안씨를 비롯해 3남 4녀를 보게 됐다.
안씨는 “송오리교회(덕송교회)를 거의 우리 부모님이 개척하다시피 했다”며 “하지만 나는 어디 얽매이지 않고 산속에서 야생동물처럼 사는 걸 좋아해서 교회에 꾸준히 다니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권사는 “아유 시어머니 평생소원이 바깥양반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거다”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경기도 수원에서 손주들과 살고 있는 안씨의 어머니 김형숙(87) 권사는 아들집을 찾아오면 덕송교회에 꼭 들른다. 이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당시 김 권사는 한동안 새벽예배를 인도하기도 했었다. 변 목사는 “김 권사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몸이 불편하실 텐데도 예배드리는 내내 무릎을 꿇고 기도하실 정도로 신앙이 깊은 분”이라고 했다.
덕송교회는 1971년 송오리마을에 세워졌다. 승용차로 10여분 걸리는 정선읍내 정선감리교회까지 예배를 드리러 가기 어려운 성도들이 교회를 세웠다. 한 성도의 사랑방에 모여 예배를 드리던 주민들이 작은 예배당을 짓자고 뜻을 모은 것.
덕송교회는 한때 주민 50여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 정도로 부흥(?)했었다. 교회가 비좁아 예배당 창밖에서 설교를 듣던 주민도 여럿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젊은 성도들이 도시로 떠나고 어르신도 하나 둘 세상을 뜨면서 근근이 교회 이름만 유지하는 상황이 됐다. 한 성도가 미신을 타파한다면서 마을 인근의 성황당을 부순 일이 벌어져 분위기가 흉흉해진 적도 있었다.
마을에서 콩 농사를 짓는 김순녀(76) 할머니는 10여년 전 자신을 전도했던 이웃 할머니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면서 얘기를 꺼냈다. “아파서 드러누운 할아비가 있는데 그 양반이 덕송교회를 거의 다 지었어요. 그 영감은 몸 바쳐서 교회를 지었는데도 자기가 병에 걸렸다고 할마이를 교회 못 댕기게 하고 그랬대요. 그 할마이도 얼마 전에 돌아가시고 다른 데로 이사 간 사람들도 많아서 여기 교회에는 사람이 없어. 교회 나오라고 해도 말 안 듣고 그래요. 그러니까 가만 놔둬야지 어떡해요.”
김 할머니는 당장 자신의 남편도 전도를 하지 못했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남편은 “교회에 발은 안 들여놔도 나가는 거나 매한가지”라며 고집을 피웠다. 김 할머니는 “바깥양반이 성경책을 몇 번을 찢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영감이 교회 시간 되면 왜 안 가고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고 했다.
정선 청소년 문화갈증 풀어주는 교회
2006년 12월 덕송교회에 부임한 변 목사가 중점을 두는 것은 청소년 문화사역이다. 전도 지역을 교회 인근 마을로만 한정하지 않고 정선군에 사는 청소년들로 범위를 넓힌 것. 변 목사는 3년 전부터 정선군 여량면 지역아동센터와 정선읍 북실리 ‘꿈꾸는도서관’ 등을 통해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지난 9월 정선군 청소년 문화축제에 이어 지난달 10일 정선군민과 청소년을 위한 거리음악회를 열었고 이번 성탄절에도 문화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변 목사는 “청소년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햄버거 가게 하나 없고 영화 한 편 보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강릉이나 원주까지 나가야 할 만큼 정선은 문화적으로 상당히 취약해서 청소년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변 목사 부부는 자녀들과 함께 지역월간신문을 집집마다 돌리면서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가까워지고 부담 없이 성경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다.
타지 사람들을 경계하는 주민들은 ‘목사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변 목사를 특별히 따뜻하게 맞아줬다고 한다. 덕송교회뿐 아니라 1913년에 세워진 정선감리교회가 오랫동안 마을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왔기 때문이라고 변 목사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변 목사의 유창한 강원도 사투리가 큰 도움이 됐다. 그의 아버지는 강원도 태백에서 광부로 일했고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변 목사는 줄곧 태백 지역에서 성장했다. 변 목사는 “태백 쪽은 경북 사투리가 좀 섞여 있고 맺음말의 억양도 정선 지역과 약간 다르지만 어르신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마을 주민 수가 워낙 적은 데다 대부분 농사일로 바쁘기 때문에 전도의 열매는 쉽게 맺어지지 않는다. 불교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장 안병연(44)씨는 “교회에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직접 도울 방법이 별로 없다”며 “젊으신 목사님이 반장도 맡아주시고 조롱박을 가공해 판매하는 사업을 비롯해 마을 일에 적극 참여해 주시니까 되레 우리 마을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변 목사는 대출과 외부 지원 등을 통해 한 달에 70여만원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 변 목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선군 내 목회자들은 종종 모임을 갖고 공동 집회를 여는 등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날도 덕송교회 사택에는 정선군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목회자 3명이 모여 있었다. 임계면 임계감리교회 이선재 목사와 고한읍 고토일감리교회 이준행 목사, 남면 자미원감리교회 주신도 담임전도사였다.
주 담임전도사는 “우리 교회도 산골에 있는데 얼마 전부터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변 목사님 댁에서 좀 씻고 가려고 들렀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이준행 목사는 “우리 교회는 폐광촌에 있는데 여기처럼 성도가 두세 명뿐”이라며 “정선군에 있는 감리교회 30여곳 중 절반 이상이 미자립교회”라고 말했다.
연장자인 이선재 목사는 후배들에게 나눠줄 감귤과 단감 박스를 들고 덕송교회를 찾아왔다. 그는 “조그만 교회에서 사역한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언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자세로 목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 목사는 “고된 일에 나서느니 다른 길로 빠질까 고민도 여러 번 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가 곁에서 잡아주는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변 목사 부부는 목원대 신학과 동창이다. 그는 2010년 목원대 신대원을 졸업한 뒤 지난해 봄 목사안수를 받았다.
변 목사의 장기적인 비전은 교회 인근에 청소년문화센터와 기독교육연구센터를 만드는 것. 변 목사는 “도시교회보다 할 일이 훨씬 많은 게 시골교회”라면서 “젊은 목사가 능력이 없어서 시골에 묻혀 있다는 말을 들으면 힘이 빠질 때가 있지만 척박한 곳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목회자가 되도록 기도한다”고 말했다.
▶덕송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출발할 경우 5시간 정도 걸린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신갈JC까지 가서 영동고속도로 원주방면으로 갈아타 진부IC까지 간다. 진부IC에서 ‘진부’ 방면으로 나와 오대교사거리에서 ‘장평, 정선’ 방면으로 우회전, 2㎞쯤 가다가 화진부교차로에서 ‘태백, 정선’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59번 국도를 타고가다 나전삼거리에서 ‘태백, 정선’ 방면으로 우회전 해 42번국도로 진입, 7㎞ 지나서 좌회전한다. 이어 송오다래길을 따라가면 좌측에 교회가 보인다.
정선=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