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 김만덕과 ‘아기장수 설화’와의 만남… 현길언 장편소설 ‘꿈은 누가 꾸는가’
입력 2012-12-06 18:04
섬은 닫혀 있다. 전염병이 돌면 섬사람들은 전멸하고 말 정도로 치명적이다. 언어도 전염병이 될 수 있다. 제주 민간설화인 ‘날개 달린 아기장수’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태어난 아기는 훗날 역적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 날개를 꺾어버리고 만다는 이 설화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그게 민간에서 자생됐다는 측면에서 제주는 패배적인 섬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 설화의 기원은 ‘큰 나라의 풍수사인 고종달이 제주의 지맥을 끊어버려 제주에서는 뛰어난 인물이 날 수 없다’는 고종달 설화와 맞물린다. ‘날개 달린 아기장수’ 설화란 결국 외부에서 이식한 언어적 전염병인 셈이다.
제주도 출신인 소설가 현길언(72·사진)은 신작 장편 ‘꿈은 누가 꾸는가?!’(도서출판 물레)를 통해 이 비극적 결말에 대한 뒤집기를 시도한다. 주인공은 비천한 관기에서 거상이 된 실제인물 김만덕(1739∼1812). 작가는 김만덕의 옛 연인이었던 가공의 인물 정득영을 아기장수 설화로 기름 붓는다.
정득영은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태어난 비범한 능력의 인물이다. 하지만 제도의 토착 세력에 항거하다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수장을 당하고 만다. 그는 죽는 그날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무지개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가 올라갔던 자리에 일종의 암초인 ‘여(嶼)’가 돼 다시 나타난다. 제주 사람들은 이를 ‘장수 여’라고 하면서 그들의 꿈을 키운다.
이렇듯 도입부에 정득영의 죽음을 서술하고 있는 작가는 “작품을 쓰는 동안 이러한 설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식을 은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그 많은 제주 사람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꿈과 억압과 폭력적인 일들이 왜 그리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가를 알게 되면서 섬뜩했다”고 말했다.
그 섬뜩함은 제주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중간 관리들의 횡포, 합법을 가장한 각종 수탈 행위, 보신을 위한 행정, 집단 이기주의 등으로 소설에서 형상화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악한 세력과 싸우던 김만덕이 이들을 회심시킨 후 새로운 섬을 찾아 떠나는 장면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 새로운 섬이야말로 대립적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환상적인 현상이자 미움과 대립과 갈등을 초월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