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영숙 (7) 가난에 대학포기… ‘공부방’ 개설 과외에 전도까지

입력 2012-12-06 18:00


스펄전 목사님의 말씀대로 가난은 변장된 축복이었다. 가난 때문에 인생의 모든 풍성한 것들이 하늘에서 오며 그분의 것임을 철저히 배웠다. 그동안 부족함 없이 살면서도 감사하지 않고 교만했던 것을 회개했고 인생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일찍부터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법을 배웠다. 가난과 고통은 우리 삼남매의 삶을 주님께 돌아오게 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힘을 믿었던 오빠까지 만지셨다. 오빠에게 두 척의 큰 방주를 보여주시며 한 척은 이남에, 다른 한 척은 이북에 띄우라고 꿈에서 말씀하셨다. 그 사명으로 오빠는 목사님이 됐고 현재 북한 선교를 위해 열정의 목회 사역을 펼치고 있다. 남동생은 어쩌면 가난했던 그 시간을 누구보다 힘들게 보냈을 것이다. 한참 공부해야 하는 때에 큰 한파를 만난 격이 되었으니 한동안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의 손을 잡아주셨고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며칠 전 동생 부부가 분당 지구촌교회에서 전도 폭발을 마친 뒤 자랑하듯 수료증을 보여줬다. 영혼 구원을 가장 귀한 가치로 여기며 훈련받은 모습이 얼마나 귀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역경은 우리 삶을 주 앞에 돌아오게 하고 열매 맺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뒤돌아보니 가장 어려웠던 그 시절을 통해 나는 부모님이 미처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들을 인생에서 배우며 성장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도 어쩌면 그 성장 과정의 일부였다. 물론 어려운 가정 형편이 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우기는 했지만 나는 그 일을 통해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가슴 아픈 눈물을 본 다음날 학교에 가서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펄쩍 뛰면서 만류했다. 급기야 교장실에까지 불려갔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가장 안타까워하셨던 분이 교장선생님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리화순’ 교장선생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단다. 그래도 꿈을 포기하면 안 되는 거야. 더욱이 너는 학교에서 성적 장학금까지 주면서 좋은 대학에 가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금 포기하면 어떡하니. 잘 생각해 보거라.”

그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안했다. 다음을 인도해주실 주님을 기대하는 믿음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처럼 꿈을 포기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날의 경험은 훗날 좋은나무성품학교에서 ‘기쁨’이란 성품을 정의하는 기초가 됐다. 기쁨은 어려운 상황이나 형편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태도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4∼6) 말씀을 암송하면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며 모든 길을 그분께 맡겼다.

그리고 과외선생님이 됐다. 나처럼 3년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친구 맹정애와 함께 2학년 후배들을 모아 영어, 수학을 가르쳤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정애와 ‘에덴학원’이라는 공부방을 차렸는데, 시간이 지나자 제법 아이들이 많이 모였다. 주로 초등학생과 고등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공부방으로 오기 전까지 나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암송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교 2학년 학생들의 진학 상담을 하면서 나는 간증을 섞어 전도를 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전도에 관심을 갖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명색이 과외선생님이 말을 하는데 학생들이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이유가 뭘까.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