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나눔의 뜨개질
입력 2012-12-06 18:40
하얗게 눈꽃 입은 가로수를 보며 좋아했는데 회색으로 얼어붙은 눈길을 보니 갑자기 한기가 몰려든다. 영하 10도의 추위가 옷깃을 넘어 파고드는 겨울날. 이런 날씨에 폭신한 털실목도리만큼 따뜻한 것이 있을까. 게다가 누군가가 날 위해 손수 떠준 목도리라면 밍크목도리 부럽지 않을 만큼 포근할 것이다.
뜨개질은 참 신기한 손작업이다. 실을 고르는 순간부터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누군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위한 빨간 벙어리장갑, 애인에게 줄 꽈배기목도리, 새언니에게 선물할 무릎담요…. 대부분의 경우 누군가를 위해 뜨개질을 한다. 한 바늘 한 바늘 떠내려가면서 그 누군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크기는 잘 맞을까, 좀 무겁지 않을까, 색은 잘 어울릴까. 그렇게 생각을 엮어 뜨개질을 하는 동안, 누군가를 향한 고운 마음 덕분에 뜨는 사람이 더 따뜻하고 행복하다.
며칠 전 그 따뜻한 행복감을 전해줄 물건이 도착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 여섯 번째 이야기.’ 택배상자에 적힌 글씨를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바쁘다. 작년에 못 보낸 모자들을 생각하니 올해는 부지런히 떠서 늦지 않게 보내야지 싶다. 3년 전, 인터넷 쇼핑 중에 우연히 알게 되어 시작한 나눔의 뜨개질. 난생처음 대바늘을 잡고 조금 애 먹긴 했지만 정말 즐거웠다. 덕분에 매년 이맘때쯤이면 기분 좋은 설렘으로 마음에 생기가 돌고 밝아진다. 작은 행복이다.
지난 5년간 총 23만7983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56만3116개의 모자를 만들었다. 또 털실판매기금 37억원을 모아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등 9개국에 우물을 파고 보건소를 짓고 백신과 항생제를 지원했다고 한다.
해마다 전 세계 200만명의 아기들이 태어난 날 바로 사망하며, 400만명의 신생아들은 태어난 지 한 달 안에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피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목숨을 손바닥만한 털모자 하나로 살릴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가. 한 코 한 코 마음을 다하게 된다.
밥 한 끼, 커피 한 잔 사먹을 돈이면 된다. 그것으로 한 아이와 어머니를 살리고 그 가정을 지킬 수 있다. 거기에 약간의 시간과 수고로움을 더하면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채워준다. 시작은 아주 작은 나눔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누군가와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크고 넉넉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좀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