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교육도 대물림?”… 불편한 질문의 답은 “YES”
입력 2012-12-06 17:36
불평등한 어린 시절/아네트 라루/에코리브르
교육도 대물림되는가.
우리는 누구에게나 재능이 있고 노력을 하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메리칸 드림’ 신화가 살아있는 미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 질문에 대한 실증적 해답을 찾아 나섰다.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는 9세와 10세 자녀를 둔 열두 가정을 중산층, 노동자계층, 빈곤층의 3계층으로 범주화해 가족 구성원을 1개월여 동안 집중 관찰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사회 계층 차이가 아이들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게 확연히 보였다.
중산층 가정에서 부모의 ‘집중양육방식’으로 자라는 개릿 탈링거 3남매를 보자.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온 이 집 맞벌이 부부는 퇴근 후 아이들을 농구 레슨 등의 프로그램에 데려다 주는 일로 숨쉴 여유조차 없다. 아이들은 대체로 어른의 공간에서 어른 지도를 받으며 자랐다.
노동자계층과 빈곤층 가정의 일상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중산층 가족이 느끼지 못하는 경제적 문제로 고민한다. 빈곤층 엄마는 애들을 보살피는 건 고사하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거나 아이들 빨랫거리를 공용 세탁소까지 들고 가느라 길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래도 아이들 삶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부모가 가끔 돈 문제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많다.
계층별로 아이들이 배우는 언어사용법도 달랐다. 대도시의 흑인 중산층 알렉산더 윌리엄스 가족은 언어 그 자체를 즐긴다. TV를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눈다. 엄마는 대화를 진행하는 매 순간 교육적 요소를 끌어내려 애썼다. “캠프에서 핫도그를 먹었는데, 소시지가 타버린 거 있죠. 새까맣게!” “저런! 그런 걸 먹으면 안 되는 걸 알지?” 대화를 통해 자녀는 자연스럽게 정보를 습득하고, 의사소통기술을 익힌다.
하지만 흑인 빈민층 가정에서 언어는 기능적 역할만 수행한다. 정부의 ‘푸드 스탬프’ 지원을 받는 헤럴드 맥앨리스터 가족 사이에선 의사 표현을 위해 아주 적은 숫자의 단어만 사용되고 있었다. 대화는 그리 없었다. “지금 그 시금치 다 먹지 못하면 못 일어날 줄 알아.” 아침 식탁에서 엄마는 이처럼 자녀에게 설득이 아닌 일방적 지시를 내렸다. 아이들은 말대답을 거의 하지 않고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가 되는 건 이 지점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어휘력, 독해력 등 아이의 학습능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미래의 사회생활에서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층 및 빈곤층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을 하고 협상을 하는 경험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가정과 공공기관 사이에 이뤄지는 관계에서도 사회 계층적 차이는 분명했다. 중산층 가정의 엄마는 교사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간섭’하고 아이가 학교 영재 프로그램에 떨어질 경우 다른 수단을 동원했다. 부모의 이런 시도 자체만으로 아이들은 원하는 걸 성취하는 방법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인종과 상관없이 중산층 아이들은 중산층 특유의 권리 의식을 갖고 있다. 어른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할 줄 알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대변할 줄 알았다.
이렇듯 부모를 통해 문화자본을 축적한 중산층 아이는 사회의 첫발을 3루에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의 부제처럼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은 대물림되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선 후보들이 읽어봐야 할 책이다. 박상은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