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예수는 단순히 지혜로운 선생에 불과했다?
입력 2012-12-06 13:33
예수는 단순히 지혜로운 선생에 불과했다?
안티들의 도전 : “도마복음의 예수가 진짜 예수의 모습이다.”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단순히 지혜로운 선생이었다.”
도마복음은 ‘신약’ 베낀 영지주의성 문서
“목사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사복음서에서 진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나요? 진짜 예수님의 모습은 도마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필자가 심방 갔을 때 어느 평신도가 던진 질문이었다. 깜작 놀랐다. 어떻게 평신도가 이런 수준의 질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요즘 우리 주위에서는 ‘도마복음에 나오는 예수가 진짜 예수의 모습이다. 역사 속에 살았던 실제 예수의 모습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순히 지혜로운 선생에 불과했다. 도마복음 속의 예수는 기적도 행하지 않고 병도 고치지 않고 귀신도 내쫓지 않는다. 단지 예수는 지혜를 가르쳤던 한 사람의 선생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가끔 들을 수 있다. 급진적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안티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도마복음에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우선 도마복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도마복음은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나그 하마디 문서들 중의 하나이다. 이 문서는 주로 AD 2∼3세기 영지주의 문서들로서 초기 교회들로부터 정경(canon)으로 인정받지 못한 외경(apocrypha)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그 하마디 문서들은 대략 52개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마복음이다. 도마복음은 114개의 예수 어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도마복음은 Q자료와 동일한 형태이며 예수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들은 존재하지 않고 예수의 말씀들만 모아놓은 어록 복음서(saying gospel)이다. 이 도마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제자였던 도마가 아니며 단지 이름만 도용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만 모아놓은 이 도마복음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가? 일부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인 학자들은 사복음서보다 도마복음이 더 일찍 쓰였다고 주장한다. 예수를 인간으로 보는 ‘예수 세미나’의 대표적 학자인 존 도미닉 크로산은 도마복음의 첫 번째 편집이 AD 50년대이며, AD 60∼70년대에는 실제로 도마복음의 본문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크로산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도올 김용옥 교수는 그의 책 ‘도마복음이야기’에서 “나는 도마복음서의 프로토텍스트(proto-text)의 성립연대를 AD 50년경, 느슨하게 잡아도 AD 50∼70년이라고 확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에 의하면 도마복음이 예수의 어록이기 때문에 사복음서보다 먼저 존재했으며 그 내용은 예수가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혜를 가르쳤던 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주장의 타당성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도마복음의 저작 연대를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많은 학자들은 도마복음의 저작연대는 AD 120년경에서 180년경으로 보고 있다. 특히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의 인성만 강조하는 자유주의 학자 발트 어만(Bart D. Ehrman)도 도마복음은 최대한 빨라야 사복음서가 기록된 후 2세기 초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실은 도마복음이 사복음서보다 후대의 저작임을 말해 준다.
둘째, 도마복음의 저작 연대가 후대라는 것은 도마복음의 저자가 신약성경을 이미 알고 있었고 신약성경의 내용을 베꼈다는 증거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도마복음과 신약성경 사이에는 많은 병행구절들이 발견된다. 병행구절이란 한 책에서 나오는 말들이 다른 책에 나오는 말들과 거의 똑같거나 상당히 비슷한 것을 말한다.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서 사이에 약 70개 이상의 병행관계가 발견되며 도마복음은 사복음서뿐만 아니라 최소한 신약성경 14권과 병행구절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 도마복음이 신약성경을 베꼈는가? 아니면 신약성경이 도마복음을 베낀 것인가?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만일 14권의 신약성경이 도마복음을 참조했다면 도마복음은 최소한 AD 40년대 중반까지 한 권의 책으로 존재했어야 했고 그 권위가 초기 교회들에게 인정되어 널리 보급됐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초기 교부들은 물론이요, AD 140년경 영지주의 이단자 마르시온의 정경 목록에도 도마복음은 언급되지 않는다. 영지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는 도마복음이 영지주의 이단자에 의해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때까지도 도마복음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셋째, 3세기 교부 오리겐이 제시한 정경 목록에는 도마복음이 ‘허위 저술’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며, 4세기 초 유세비우스의 정경 목록에는 도마복음이 ‘완전 배격된 이단서’로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도마복음이 정통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넷째, 도마복음의 예수는 사복음서의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 예컨대, 마태복음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도마복음 13장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당신은 단순히 천사와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도마복음은 사복음서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았다. 도마복음은 2세기 중반 신약성경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 성향의 문서이다. 따라서 도마복음서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만날 수 없다. 진정한 예수님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바로 그 예수님이다. 세상의 많은 유혹 속에서도 진리의 고고함으로 사는 이들의 삶은 아름답다 하겠다.
(서울 큰나무교회· 기독교 변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