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화 ‘반창꼬’로 돌아온 한효주] 욕설… 막무가내 행동… 어! 이게 내 스타일인가봐
입력 2012-12-05 19:11
한효주(25)의 재발견. 한껏 물이 올랐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슬픔에 가득 찬 중전으로 감정을 꾹꾹 억눌렀던 그가 이번엔 정반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남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들이대고,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 대로 막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까칠한 의사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반창꼬’의 여주인공 한효주를 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광해…’가 이병헌의 영화라면, ‘반창꼬’는 한효주의 매력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한효주는 이 영화에서 한 번의 실수로 의사면허를 박탈당하게 된 고미수 역을 맡았다. 위기에 처한 미수가 기댈 곳은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폭행을 당한 소방관 강일(고수)을 설득해 소송을 하는 방법뿐.
다분히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아내를 구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강일은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깊고도 슬픈 눈빛을 가지고 있는 고수(34), 거리낌 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한효주. 이미지 좋은 두 배우의 만남이 따뜻한 멜로 영화로 탄생했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 ‘동이’에서 보여준 단아하고 청순한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막무가내 행동으로 돌진하는 미수의 모습은 한효주가 했기에 예뻐 보인다. 그 역시 “평소 생활이나 작품에서 이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역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처음엔 이게 자신에게 맞는 옷일까 하는 고민도 많았다. 주변의 걱정도 많았다. 행동뿐 아니라 욕설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촬영장에 가니까 편하더라고요. 놀면서 연기하게 됐죠. 어, 이게 나에게 맞았네. 즐기면서 맘껏 실컷 했어요.”
1남1녀 중 첫째인 한효주는 어릴 적부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다. 참는 게 편했다. 남에게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말로는 행복하다고 해도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런 게 쌓였었는데 이번 영화에서 시원하게 풀 수 있었지요. 영화 촬영이 이렇게 기쁘고, 연기하는 게 행복한 줄 처음 알았어요. 촬영을 한 달만 더 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죠.”
영화에서는 싫다는 남자 죽자 살자 따라다니지만, 현실이라면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짝사랑은 해본 적이 없어요. 힘든 게 싫어서 맘을 잘 주지 않는 편이죠. 두려움이 많아 마음을 닫아버리는 편이랄까요.”
상대 배우 고수에 대해서는 “연기하는데 기대감이 생기는 배우”라고 평했다. 내일은 또 어떤 연기를 할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늘 상상하게 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치 호흡이 잘 맞는 투수와 포수처럼 한 명이 던지면 다른 한 명이 착착 잘 받아줬다.
감정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성당에서 미수가 강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여자가 고백하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굳이 이렇게까지 얘기해야 되나 하고 전날까지 고민 많았어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했는데 슛 들어가니까 감정이 잡히더라고요. 눈물도 나오고요.” 적극적인 고백뿐 아니라 여자가 리드하는 키스 장면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요즘은 범죄스릴러 영화 ‘감시’를 촬영 중이다. 형사 역할이라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괜찮았어요. 머리를 자른 후에 성격이 더 밝아진 느낌이에요. 까불고 예전보다 더 많이 웃게 되네요.”
한효주는 무명 시절이 길진 않았지만, 고생이 없었다고 말하면 섭섭하다고 했다. 시트콤으로 데뷔한 후 가요프로그램 MC를 맡고, 예능에도 출연했으며, 독립영화도 했다. 일일·주말드라마, 사극 등 겹치는 장르 없이 다 도전했다. “그때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스펀지처럼 다 빨아 들였지요. 지금은 어떤 게 나에게 맞는지 알 것 같아요. 앞으로는 연기만 열심히 하려고요.”
그는 ‘반창꼬’가 크리스마스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멜로 느낌이 강하지만 코미디도 있고 휴머니티도 있어요. 소방관이 주인공이라 스케일 큰 사고 장면도 나오고요. 보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에요.”
창 밖을 보던 한효주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와, 눈이 펑펑 와요. 너무 좋다.” 까칠한 미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밝고 사랑스러운 한효주가 함박눈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