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만평 교육선교센터… 강남진·임명호 선교사 부부, 잠비아에 핀 맨손의 기적

입력 2012-12-05 19:41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남쪽으로 40㎞에 위치한 공업도시 카푸에. 큰 공장들 가운데로 난 반포장도로를 따라 5분정도 들어가자 반듯한 주택가가 나타났다. 강남진(70) 임명호(63) 선교사 부부가 사역하는 임마누엘 교회는 이곳 주택가 바로 옆 넓은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부지 면적만 60만여㎡(18만3000평). 교회 외에 생활관 1동, 고아원 1동, 학교건물 4동과 텃밭이 들어서 있다. 교회에선 주일마다 현지인 14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고아원에선 9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임 선교사는 현지 정부에 간호사로 등록해 의료선교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강 선교사 부부가 여기까지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깝다. 1993년 이곳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외환위기 등으로 후원이 중단되면서 갖은 고난을 겪었다. 머물 곳이 없어 선교사를 돕는 일꾼들 숙소에 머무르기도 했고 자동차를 도둑맞아 몇년동안 배낭을 메고 선교지를 찾아다녔다. 강 선교사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성구를 붙들고 울며 기도했다”고 회고했다.

강 선교사가 해외선교에 소명을 갖게 된 것은 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선교100주년선교대회에서 은혜를 받고서부터다. 충남 아산에서 양계와 낙농을 하던 그는 곧바로 신학교에 등록하고 해외선교를 준비했다. 당시 14살과 16살이었던 두 아들을 자취하게 하고 93년 임 선교사, 이듬해 강 선교사가 잠비아로 왔다. 그러나 파송한 교회가 2년만에 파송을 철회하고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후원금은 월 200달러까지 줄었고 6개월간은 아예 끊어지기도 했다. 강 선교사는 사역지를 찾아 잠비아 오지를 헤매다 차량이 3바퀴 구르는 전복사고도 당했다.

통곡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98년 카푸에시로부터 지금의 땅을 불하받았다. 본격 개발 전이어서 큰 비용은 들지 않았다. 1년간 버스로 출퇴근하며 교회부터 건축했다. 이어 생활관과 고아원을 짓고 학교 건축을 시작했다. 월 1000달러 안팎의 후원금으로는 불가능해보였지만 뜻밖의 후원자들이 나섰다. 임 선교사는 “안산 수정교회 박득수 목사는 부흥회를 마친 뒤 차량을 구입하라고 모아준 돈을 놓고 시험에 들까봐 기도하다 잠비아에 와서 전부 주고갔다”면서 “출석성도가 60명뿐인 작은 교회인데도 지금까지 매월 30만원씩 후원금도 보내주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당시 루사카에서 사진관을 하던 김진환 사장은 매월 500달러씩 후원하면서 학교 건축비까지 지원했고, 미국 자마의 강순영 목사도 잠비아를 방문했다 건축비를 내놓고 갔다. 강 선교사가 직접 설계하고 현장감독까지 겸하면서 6년여만에 4동의 학교 건물을 완공했다. “기독교 교육을 통해 잠비아의 미래세대를 복음으로 양육하겠다”는 강 선교사의 비전은 이제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강 선교사는 몇년전 굶주리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의 소식을 접한 이후 하루 두끼를 금식하고 있다. 잠비아의 명소인 빅토리아폭포에도 다녀오지 않았을 정도로 오직 기도와 성경,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지금 그의 기도제목은 비전을 갖춘 동역자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무래도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강 선교사는 “잠비아 사람들은 평온하고 신앙성도 있지만 이단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상황이 좋지 않다”면서 “기독교 교육으로 잠비아의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소명을 가진 분들이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immyungho12@gmail.com).

카푸에(잠비아)=글·사진 송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