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선수 첫 ‘PGA 투어 신인왕’ 재미교포 존 허… 가난은 ‘드림 샷’ 장애물이 아니었다

입력 2012-12-05 19:25

잡초인생을 살았던 재미동포 골프선수 존 허(한국명 허찬수·22). 어린시절 골프공을 살 돈조차 없어 허드렛일을 하던 그 소년이 마침내 ‘코리안 드림’에 이어 ‘아메리칸 드림’도 일궈냈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신인왕을 차지한 것이다.

1990년 미국에서 태어난 존 허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국내에서 섬유업을 하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2002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골프를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지만 그에게 골프는 사치였다. 가난한 집안 환경에서 아버지는 노동, 어머니는 식당일을 했고, 한때 야구를 했던 형은 옷장사를 하며 어린 동생을 뒷바라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형편상 존 허는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연습용 공조차 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 고교시절 로스앤젤레스 인근 포레스트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몰래 공을 주워 연습하다 골프장 관리인에게 쫓겨난 적도 있다. 결국 존 허는 새벽 5시 집에서 15㎞나 떨어진 퍼블릭골프장으로 가서 잡일을 도우며 무료로 공을 때렸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교시절 주니어 대회에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캐나다 투어를 뛸 때는 햄버거 하나로 하루를 버티며 대회를 치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눈을 돌린 곳은 한국 투어였다. 영어 이수점수 미달로 대학 진학이 좌절된 데다 미국보다 이동 거리가 짧아 비용이 덜 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존 허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도 미니대회에서 딴 돈으로 샀다.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한국무대에 뛰어들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했다. 서울 미아동에 숙소를 마련한 존 허는 무거운 골프백을 메고 경기도 성남 분당에 있는 연습장으로 매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연습을 했다. 경비를 줄이려고 아버지 허옥식(60)씨가 캐디를 맡았지만 골프 규정에 익숙지 않은 허씨가 2009년 삼성베네스트오픈 때 너무 힘이 들어 카트를 타고 이동하다 벌타를 받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이 같은 고난을 이겨낸 존 허는 결실을 맺었다. 2009년 한국에 뛰어든 지 1년이 지난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것. 당시 존 허는 가족들 생각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존 허는 그 대회 우승으로 받은 상금 2억원을 발판으로 다시 미국에 진출했고,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올해 PGA 투어에 합류했다. 미국에서도 올해 28개 대회에 나와 마야코바 클래식 우승, 4월 발레로 텍사스 오픈 공동 2위 등 10위 안에 네 차례 들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올 시즌 상금도 269만2113달러를 벌어들여 상금 순위 28위에 올라 가난도 함께 떨쳤다. 결국 존 허는 5일 PGA 투어 2012시즌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일궜다. 90년 PGA 투어 올해의 신인이 만들어진 이래 아시아 선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존 허가 처음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