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추락한 한인 구조않고 사진만… 美 ‘비정한 특종’ 파문

입력 2012-12-05 21:05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시민을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은 기자와 해당 사진을 실은 매체가 미국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12시30분쯤 프리랜서 기자 우마 압바시는 뉴욕 맨해튼의 한 지하철 역에서 행인들에게 시비를 거는 청년에 맞서던 한인 교포 한기석(58)씨가 선로에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자신을 말리며 꾸짖자 분기를 참지 못한 청년이 한씨를 떠민 것이다. 그 순간 전동차 진입 소리가 났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바로 누군가 달려갔다면 한씨는 목숨을 건질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안’은 나타나지 않았고, 압바시 기자는 카메라를 꺼냈다. 그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뒷모습만으로도 생생하게 뿜어내는 공포를 렌즈에 담았다. 다음날 아침, 현지 유력지 뉴욕포스트 1면엔 “이 사내가 죽을 겁니다(This man is about to die)”라는 큼지막한 문구와 함께 한씨의 마지막 순간이 실렸다.

뉴욕포스트 독자들은 물론이고 미 언론, 트위터 등이 발칵 뒤집혔다.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하지 않고 특종 욕심에 사진을 찍은 기자와 선정적인 사진을 실은 뉴욕포스트의 비인간적 저널리즘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뉴욕포스트는 해킹 스캔들로 영국을 들끓게 했던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 소유 미디어그룹 뉴스코퍼레이션 자회사로 다시 한번 비윤리적 보도행태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CNN 스타기자 솔레다드 오브라이언은 트위터에 “끔찍하게 충격적이다. 당신의 아버지나 형제였다고 생각해보라”고 적었다.

USA투데이는 “사람들이 잘못되는 일을 크게 보도하는 불쾌한 타블로이드가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고 썼다. 포브스 등 여러 매체는 “이 사진은 과연 윤리적인가”를 물었다.

압바시 기자는 “다가오는 전철에 경고하기 위해 플래시를 터뜨린 것”이라며 “그를 끌어올릴 힘이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설득력은 얻지 못했다.

변을 당한 한씨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용기를 낸 의인으로 알려졌다. 사고를 목격한 로라 카플란씨는 “한씨는 혼잣말과 욕설을 하며 승객들을 괴롭히는 용의자에 맞서 모르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다 당했다”고 말했다. 역내 CCTV 영상엔 용의자가 한씨에게 다가가 잠시 말다툼을 하다가 한씨를 민 것으로 나온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나임 데이비스(30)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