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위프로젝트] (중) 과부하 걸린 위센터
입력 2012-12-05 21:12
꼭 필요한 임상심리사들 지원 기피… 정부는 뒷짐
전남 해남군에 사는 A군(11)은 왕따다. 교사와 학부모가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해도 또래들은 A군을 꺼린다. 학교를 옮겨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고 A군의 고통은 가중됐다. 해남 위센터 소속 전문상담교사가 지난 6월 학교로부터 의뢰를 받아 상담에 나섰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어떤 심리적·정신적 장애로 인해 상담이 겉도는 것이 분명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임상심리사가 나서야 했지만 해남 위센터에는 없다. 임상심리사는 다양한 검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위기학생을 도와야 할지 방법을 제시하는 위센터의 필수 인력이다. 위센터 측은 A군 부모에게 정신과 전문의 상담을 권유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보험가입이나 취업 시 차별을 받기 때문에 안 된다. 위센터에서 어떻게든 해 달라”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임상심리사를 구하지 못한 해남 위센터는 A군에게 5개월 넘게 제대로 된 도움을 못 주고 있다.
◇임상심리사 구하기 전쟁, 정부는 뒷짐=해남 위센터를 비난할 일만은 아니었다. 해남 교육지원청은 올해 다른 지역보다 급여를 30만∼50만원 높게 책정해 다섯 차례나 채용공고를 냈다. 그러나 지원자가 단 1명도 없었다. 해남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우리 같은 지방 소도시에서 임상심리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임상심리사들이 기피하는 건 위센터 근무가 임상심리사의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임상심리사 2급 자격증을 1급으로 올리려면 일정 기간 현장 경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위센터 근무 경험은 제외된다. 게다가 급여도 병원보다 50만∼80만원이나 낮다. 대도시의 경우 그나마 인력 충원이 가능하지만 지방 소도시의 경우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위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는 뒷짐만 진 채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교과부는 국민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조만간 두 부처 간 정책협의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교과부가 그동안 일선 위센터의 사정과 실태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위센터의 핵심 인력인 임상심리사의 부족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 136개 위센터에 배치된 임상심리사는 93명으로 충원율 68%다. 178개 교육지원청별로 보면 50% 남짓이다.
도농 간 지역별 편차도 크다. 충남은 9개 위센터에 1명, 전북은 11개 위센터에 3명에 불과하다. 반면 경남·부산·대전·울산 등은 100% 충원율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서울은 16개 위센터에 8명으로 50%다.
◇‘출장소’로 전락한 위센터=대도시와 지방 소도시를 막론하고 위클래스 부족 문제(본보 5일자 1·7면)는 위센터를 과부하 상태로 몰아넣고 있었다. 위클래스가 제 기능을 못해 1차 상담 기능이 저하되면서 위센터가 마비되는 형국이다. 한 상담교사는 “담임교사나 위클래스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이인데 단지 말썽꾸러기라는 이유로 제대로 상담도 안 해보고 위센터로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체 상담 건수의 절반이 넘는다”고 말했다.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권에 있는 위센터들은 과도한 상담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고, 지방 소도시는 지나치게 넓은 지역을 맡고 있어 제대로 된 상담이 불가능했다. 해남 위센터가 대표적인 곳이다.
본보가 방문했을 때도 해남 위센터는 텅 비어 있었다. 전문상담사들은 출장 일정이 가득했으며 내담한 학생도 극히 드물었다. 해남 위센터는 반경 100㎞ 영역을 맡고 있으며 완도와 진도까지 포함하면 이동거리는 더욱 길어진다.
전체 39개 해남 지역 초·중·고 가운데 센터가 있는 읍내 소재 학교는 6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33개 학교는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다. 위클래스는 18개 학교에 있으며 이 가운데 2곳만 정식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돼 있다. 나머지는 전문상담인턴교사 등이 위클래스를 운영한다. 위 센터 관계자는 “전문상담인턴교사는 퇴직한 교과 교사 등이 맡고 있다. 나이든 교사들은 경험이 있긴 하지만 상담의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위센터 소속 상담 인력들이 위클래스에서 다루기 버거운 학생을 진단·치료하는 상위 기관 역할이 아니라 제 구실 못하는 위클래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규 상담인력은 행정 잡무, 비정규 인력은 수시로 교체=해남 위센터에는 정규직 전문상담교사(정규교사 신분)가 1명이다. 나머지 인력은 계약직 신분이다. 그런데 학생상담의 숙련된 인력인 전문상담교사는 정작 학생들과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해남의 전문상담교사는 “학생 상담시간보다 직원들 월급 계산하거나 통계 만드는 업무 등 행정업무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안성 교육청 소속 전문상담교사는 “저는 학생 상담에 훈련된 인력이다. 그런데 전문상담사들을 훈련시키고 다른 행정업무를 하느라 정작 상담할 시간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해남·대구·인천·안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계약직 상담 인력 상당수는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방학과 신분상 불확실한 기간을 빼면 실제 상담에 집중하는 기간은 8개월 남짓이다. 해남 위센터 상담 인력은 1명을 빼고는 모두 계약직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교과부와 총리실이 준비 중인 ‘위 프로젝트 사업 관리·운영에 관한 규정’(위훈령) 때문이다. 본보가 입수한 위훈령(안)에는 교육감 등은 필요에 따라 전문상담사를 뽑을 수 있도록 하면서 전문상담사 자격을 나열했다. 그런데 ‘전문상담교사와 청소년상담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등 관련 자격증 소지자’로 모든 자격조건을 동일하게 취급해 버렸다. 이럴 경우 숙련된 인력인 전문상담교사는 배제되고 사회복지사 등이 일선 상담현장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굳이 비용이 많이 드는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지 않아도 될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해남=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