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현철]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의 리더십
입력 2012-12-05 18:16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이 2004년 이후 8년 만에 나왔다. 최근 원자력진흥위원회는 내년에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해 국민 참여로 대책을 모색하고, 2015년에 시급한 중간저장시설 부지 선정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2004년 국민적 공감대 아래 추진하겠다는 원자력위원회 의결 이후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우리의 방침은 관망정책, 다시 말해 천천히 두고 보자였다. 외교적 이유로 처리 방식을 논할 수 없다는 점도 있었지만 역대 정부에서 부지 선정 과정 중 불거질 여론에 부담을 느껴 논의를 미뤄온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실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1개 원전에서 연간 배출되는 사용후 핵연료 폐기물은 690t이다. 원전 내 임시저장소에 보관돼 있는데 2016년부터는 단계적으로 포화가 시작되어 별도 보관시설이 시급하다. 폐기물 보관 장소가 부족하면 결국 원전을 멈추는 방법밖에 없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2024년에는 포화가 불가피한데 건설 기간을 감안하면 늦어도 2018년에는 건설을 시작해야 하니 정책 추진이 시급하다. 이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대책을 당장 마련해야 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접한 국민들의 안전한 관리 대책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다.
사용후 핵연료의 해법을 찾기 어렵다지만 지방자치단체, 의회 등이 리더십을 발휘해 의외로 쉽게 해결한 나라도 있다. 관련법과 제도를 최적화하고 주민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방식이다.
일본은 자치단체장이 리더십을 활용해 3년 만에 중간저장시설 부지를 마련했다. 아오모리현 무쓰시의 스기야마 마사시 시장은 정치적 신뢰를 바탕으로 중간저장시설을 50년만 운영한다는 점을 강조해 주민을 설득했다. 그리고 법률상 명시된 연간 약 24억엔의 교부금으로 의료·교육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약속하며 시설을 유치했다.
스페인은 지난 30년간 정부가 결정을 회피하자 2004년 의회가 나서서 정부에 중간저장시설 확보를 만장일치로 촉구했다. 그 결과 14개월 만에 유치지역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이후 11개 지자체가 유치 의사를 표시했고 고준위 폐기물 여건을 감안, 올해 중간저장시설 개념 및 저장 방식을 확정했다.
다행히 우리 정부도 국민 참여를 갈등의 해법으로 내놨다. 과거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에서 정부의 일방적 추진이 크게 문제된 점을 고려해 투명한 절차를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중저준위 방폐장과 같은 사회적 갈등을 겪지 않기 위해선 사용후 핵연료 문제에 직간접적인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를 보장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또 이런 논의가 사회적 비용만 보태지 않도록 공론화 결정과 수용에 대한 사전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투명한 공론화 추진과 더불어 환경과 안전을 위한 사용후 핵연료 관리 대책이 지연되지 않도록 처분 계획을 주기적으로 제정, 공표하는 식의 보완장치 역시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최종처분 계획을 10년 주기로 5년마다 제정해 공표하도록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다.
올 초 방사성 화장품, 식품 논란 등에서 알 수 있듯 방사성 폐기물 안전 대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요구는 어느 때보다 높다. 사용후 핵연료 포화에 대비하는 관리 대책 마련이 더 이상 탁상공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최현철 고려대 교수 미디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