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수 對 진보 총집결로 가는 대선전
입력 2012-12-05 18:17
졸속 결합 넘어서려면 이념·정책 정체성 확립해야
18대 대선은 보수 대 진보의 결집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선거란 원래 표만 된다면 이념이나 성향을 떠나 인물을 찾고, 경쟁자 심지어 숙적까지도 끌어안는 게 일상화된 장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돌풍을 일으키던 제3의 후보 안철수씨가 사퇴한 뒤 양대 구도 고착화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는 최근 친이명박계 좌장이던 이재오 의원이 지지 선언을 했고, 어제는 세종시 문제로 2005년 박 후보와 갈라섰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가세했다. 짙은 보수색을 내던 선진통일당은 이인제 대표와 함께 아예 새누리당과 합당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도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해 보수 대결집이 이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에 이어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동교동계 인물까지 합류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 선거부정 사태로 탈당한 진보정의당 심상정 전 후보가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안철수 전 후보도 선거운동 지원 의사를 공표했다. 문 후보 지지 인사들은 6일 범야권 공조체제인 ‘정권교체-새정치 국민연대’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 조직에는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중재역을 자임하며 중립지대에 머물러 있던 인사들이 본격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양대 구도에 대해 원칙 없는 작위적 결합, 득표를 위한 야합이라는 비판도 있으나 우리 정치권이 보수-진보로 재편돼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출중한 명망가가 아니라 이념에 따라 양대 진영이 구축돼 건전한 대결을 펴는 것이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고, 특히 고질적인 지역구도 청산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이런 점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중심의 정치세력 결집 현상은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모멘텀을 제대로 살리려면 양 진영이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국정 운영의 청사진, 장기적인 집권 플랜을 마련하고 세부 정책들을 세밀히 다듬어야 한다. 선거 조직은 선거 결과에 따라 언제든 다시 이합집산할 수 있다. 단순한 정치 인사들끼리의 물리적 결합을 넘어서려면 이념과 정책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화학적 결합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들만을 위한 결합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결합이 될 수 있다.
보수와 진보의 정체성 확립은 쉽지 않다. 안 전 후보가 최근 자신의 캠프 모임에서 “난 합리적 보수이자 온건한 진보”라고 밝혔듯 양 이념을 명확히 가르기 어렵다.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복지나 외교·안보 등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진영의 정책과 인물까지 흡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럴지라도 양대 진영은 대선 이후 정치질서까지 고려하는 큰 그림을 그려 유권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선거만을 위한 졸속 결합에서 벗어나 정치가 한 단계 성숙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