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보다 붉은 하늘 ‘그날’을 기다린다… ‘우주를 향해 열린 창’ 고흥의 바다
입력 2012-12-05 17:44
고흥의 바다는 나로호의 화염보다 붉고 천경자의 작품보다 화려하다. 하늘과 바다를 캔버스 삼아 붉은 물감으로 덧칠하는 남열해수욕장의 일출과 득량만 갯벌을 유자색으로 채색하는 중산리의 일몰은 고흥을 대표하는 풍경화. 호수로 변한 해창만과 고흥만을 활주로 삼아 이착륙을 반복하는 고니 가족과 거금도의 공룡알 해변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고흥의 미술품이다.
전남 고흥은 바다가 예술이다. 해안선이 톱니바퀴처럼 복잡한 고흥반도와 나로도, 외나로도, 소록도, 거금도 등 15개의 유인도와 122개의 무인도가 어우러진 다도해는 호수처럼 잔잔해 수반에 올려놓은 수석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 일출과 일몰의 감동까지 더해져 고흥의 바다는 글로도 표현할 수 없고 그림으로도 묘사할 수 없는 서부진화부득(書不盡畵不得)의 경지를 연출한다.
‘우주항공로’로 이름을 바꾼 77번 국도를 타고 고흥반도에 진입해 처음으로 만나는 미술작품은 일몰이 아름다운 남양면 중산리의 바다. 도로변에 위치한 중산일몰전망대 앞으로 우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유·무인도가 중중첩첩 농담(濃淡)을 달리하며 득량만을 향해 징검다리처럼 뻗어 나간다. 해질녘 붉게 물든 갯벌에서 뻘배에 의지해 꼬막을 캐는 아낙들은 한 폭의 풍경화.
벌교꼬막의 명성 때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흥은 우리나라 최대의 꼬막 생산지. 고흥과 보성 사이에 위치한 득량만과 고흥과 여수 사이의 여자만에서 채취되는 고흥꼬막은 쫄깃쫄깃한 맛의 참꼬막으로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한다. 꼬막이 가장 맛있는 때는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이달부터.
도덕면 용동리에서 두원면 풍류리까지 득량만에 2873m 길이의 방조제를 쌓아 만든 고흥호는 겨울철새들의 보금자리. 바다에서 담수호로 바뀐 고흥호에는 갈대밭이 드넓게 펼쳐지고 호수 한가운데는 백조로 불리는 고니 가족 수십 마리가 한가롭게 떠다닌다. 1월에는 가창오리 수만 마리가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갈대밭을 배경으로 화려한 군무도 선보인다.
쾌속선으로 제주도가 2시간대인 도양읍의 녹동항은 자동차로 소록도와 거금도의 바다를 여행하는 거점. 녹동항과 소록도를 연결하는 소록대교에 이어 일년 전에 소록도와 거금도를 연결하는 2028m 길이의 거금대교가 완공됐기 때문이다. 거금대교는 1층에 보행자와 자전거, 2층에 자동차가 다니는 국내 최초의 복층교량으로 거금도 입구에서는 매주 흥겨운 풍물장터도 열린다.
‘공룡알 해변’으로 불리는 오천몽돌해변은 거금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오랜 세월 파도에 닳고 닳아 둥글둥글한 몽돌은 수박만 한 크기로 마을 주민들이 공룡알로 부른다. 거친 파도가 몰려와 구애를 해도 꿈쩍 않는 하얀 몽돌은 여인의 피부처럼 매끄럽다. 몽돌해변 너머 수평선에는 일출이 아름다운 시산도를 비롯해 손죽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거금도 동쪽 절벽해안에 위치한 소원동산에 오르면 고흥반도를 비롯해 외나로도 등 고흥의 섬은 물론 멀리 거문도까지 보인다.
‘다도해의 숨은 보석’으로 불리던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는 1994년 고흥반도와 내나로도를 잇는 나로1대교가 선을 보이고, 이듬해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를 연결하는 나로2대교가 완공되면서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2008년 외나로도에 나로우주센터가 완공되고, 내나로도에는 우주왕복선 조종체험 등을 해보는 국립고흥청소년 우주체험센터가 들어서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공간으로 인기.
일반인 출입이 가능한 나로우주센터 반대편의 염포해수욕장은 일몰이 아름다운 해변. 파도가 들락거릴 때마다 검은 몽돌이 구르는 소리는 지구상의 어떤 악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 천상의 화음을 연출한다. 수평선에 떠있는 완도와 장흥의 크고 작은 섬과 포구에 닻을 내린 수십 척의 어선을 배경으로 해가 지는 풍경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고흥반도의 바다가 대부분 복잡한 해안선으로 인해 오밀조밀한 느낌이라면 남열해수욕장이 위치한 영남면의 바다는 해안선이 단순하고 지대가 높은데다 남동쪽으로 시야를 가리는 섬이 없어 동해바다처럼 시원하다. 외나로도가 로켓발사장으로 낙점된 것도 비행궤도에서 떨어지는 추진체나 파편으로 피해를 볼 섬이 없기 때문.
바다를 막아 옥토로 만든 해창만방조제를 달려 영남면소재지를 지나면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도로변 전망대가 나온다. 외나로도와 내나로도를 비롯해 해창만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는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감상하는 포인트. 한낮에는 은빛 바다를 수놓은 섬들이 실루엣으로 도드라져 수묵화처럼 보인다.
고흥반도 최고의 비경은 남열해수욕장 옆 절벽 위에 우뚝 솟은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서 보는 바다. 지난 10월 완공된 고흥우주발사전망대는 145m 높이의 절벽 위에 7층 높이로 만들어진 로켓 형태의 유리건물로 금방이라도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를 향해 날아오를 기세다. 외나로도의 나로우주센터는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16㎞.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서 조우하는 다도해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동쪽 해안에는 탈색한 다랑논을 비롯해 사자를 닮은 사자바위와 용이 암벽을 타고 승천했다는 용바위가 웅크리고 있고, 그 너머로 사도 낭도 개도 백야도 등 여수의 섬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다. 남쪽으로는 외나로도의 발사장 기립장치도 선명하고, 서쪽으로는 남열해수욕장을 비롯해 해창만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열해수욕장에서 용바위까지는 깎아지른 절벽의 연속.
남열해수욕장은 남해안 최고의 일출 명소로 수평선에서 옹기종기 어깨를 맞댄 금오열도 뒤에서 해가 솟으면 다도해를 뒤덮은 구름이 로켓의 화염처럼 활활 타오른다. 그리고 북쪽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서 남쪽 외나로도의 나로우주센터까지 고흥의 하늘과 바다는 우주를 향해 열린 창(窓)으로 변한다. 높은 곳에서 흥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고흥(高興)의 지명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흥=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