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영숙 (6) 도둑처럼 온 불행에 어머니 “시련은 잠깐이란다”
입력 2012-12-05 17:33
내 나이 17세.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구원받은 자녀로서 기뻐함과 동시에 가장 큰 시련을 맞이한 게 이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점점 가세가 기울더니 급기야 우리 가족은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어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지만 오빠는 당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의지했다. 내가 구원받은 기쁨을 전하면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차라리 내 주먹을 믿겠다”며 늘 자신만만했던 오빠였다. 그렇게 당당했던 오빠가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를 당하고 만 것이다.
살림을 줄이고 줄여 아주 작은 집에 둘 수 있는 기본적인 세간만 챙겨 이사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피아노만은 내가 시집 갈 때 줘야 한다며 끝까지 고집부리고 챙기셨다. 그 피아노는 훗날 어머니의 소원대로 혼수품 1호로 내가 가져갔다. 또 1986년 밀알유치원을 개원하면서 가장 큰 교실에 그 피아노를 놓기도 했다. 사실 집을 옮기면서 많이 슬펐고 화도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가족끼리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누구 때문에 망해 집까지 좁아터진 곳으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하는 마음으로 편치 않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삼남매를 불러 모으셨다. 눈치 보며 말없이 앉아 있는 우리에게 어머니는 베드로전서를 큰소리로 읽어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어머니는 “지금 우리가 시험을 받아 근심하는 것 같지만 이 근심은 아주 잠깐”이라고 설명하셨다. “나중에 크게 기뻐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시험을 잘 이겨내고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예수님 앞에서 칭찬 받는 사람들이 되자”고 강조하셨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우리가 받아야 할 가난의 고통이 곧 우리가 이겨내야 할 믿음의 시련이라고 정확히 보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가난으로 오는 고통은 심해져 갔다. 어느 날 대학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나에게 오빠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우리 집안이 이렇게 힘든 상황이 되었는데 네가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의아해하며 어떻게 도와야 되는지를 물었다. 오빠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해서 가정을 도와달라”고 했다. 집을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학을 포기하라니…. 이 일은 큰 충격이었고 쓴 뿌리가 되어 오랫동안 아픔으로 남겨지기도 했다. 그날 밤 어머니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나의 기대와 달리 어머니 역시 오빠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지금 집안 사정이 많이 힘들고 엄마도 많이 지쳤어. 네가 대학을 가도 도와줄 힘이 없단다.”
이내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셨다. 그 눈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한 번도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강인한 어머니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의 몸으로 삼남매를 키운다는 게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힘든 내색 한번 보이지 않으셨던 분이다. 그런 어머니가 딸에게 대학을 포기하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아….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구나.’
이제부터라도 어머니의 든든한 다리가 되어 드리기로 결심했다. 어머니가 의지할 수 있는 딸이 되기로 작정했다. 이방 나라의 전쟁포로가 되었지만 거룩한 영과 함께 거하는 능력으로 뜻을 정하고 세속적인 세계관 속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다니엘처럼 홀로 세상에 서기로 다짐했다.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