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월드비전 국제개발팀 차승만 과장] 에티오피아, 두 렙돈이 달리는 나무

입력 2012-12-05 17:36


두어 시간 졸았다. 불시착한 외계행성 같다. 창밖 저 밑으로 낭떠러지, 벼랑길을 휘감아 흐른다. 늙고 육중한 차체는 구부러진 바윗길 위에서 리듬을 타고, 나도 흔들거린다. 해발 3000m, 네 개의 강이 흐르던 에덴 그 어디쯤이라던 에티오피아의 산등성이 마을, 멜카벨로로 가는 중.

창밖. 아침녘 산과 들판, 그리고 마을. 이 몽환적인 평화는 치로를 떠나 딱 네 시간 하고도 반시간 동안만 이어졌다.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왔다. 차에서 내렸다. 햇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 저벅저벅 두 시간여를 걸었다. 압디구디나 마을이다. 둥구나무를 찾아 굵은 밧줄에 저울을 매달았다. 지역주민들을 불렀다. 100명은 족히 될 듯한 아이들이 몰려왔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아이. 콰시오코. 두 발과 두 손 그리고 두 뺨까지 퉁퉁 부어올랐고, 아이의 눈은 가물거리며 초점을 잃어간다. 가쁘게 숨을 쉬고 있다. 영양치료식을 먹이기에도 위험한 상태다. 당장 후송을 해야 한다. 내 걸음으로 온 힘을 다해 걸어서 두 시간. 물도 없고 침상도 없는, 벼룩이 이글거리는 담요가 전부인 보건소까지 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 마라스무스. 발가락에서부터 종아리를 타고 올라 갈비뼈를 지나 늑골, 광대뼈까지 골격만 보인다. 그 위를 덮은 딱딱한 가죽. 인체실험실 모형이 아니다. 그리고 그 옆의 아이, 또 아이들. 손가락 사이에, 무릎에, 온통 종기들이 곪아있는 아이들. 연고를 발라주는 손길이 빨라진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이 장면들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대체 무엇이 이러한 가난을 가져왔느냐는 물음이었다.

예수님은 두 렙돈을 꺼내드셨다. 제자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리라고 하셨다. 남는 것이 아니고 부스러기도 아니다. 쳐놓은 울타리를 걷어라, 삶의 영역을 기꺼이 침범당하라.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는 건 견고한 장막을 걷어내는 것. 삶의 깊숙한 자리에 그들을 개입시킨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괴로워해야 하는 것.

아름다운 에티오피아 산골 풍경에 중첩된 이 기막힌 가난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 예수님은 꺼내신 두 렙돈을 툭 하고 던져놓고 가셨다. 이곳에 이전 세대가 영양실조 치료식을 가지고 왔고, 두 번째 세대인 너희들이 왔다. 이제 그걸로 족하다. 너희 세대로 족하다. 이 집단적인 가난은 그만하면 족하다. 지금 필요한 건 두 렙돈, 그건 삶의 깊숙한 곳에 이 불편하고 성가신 나무를 이식하는 것에서부터다. 그건 두 렙돈이 달리는 나무다.

월드비전 국제개발팀 차승만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