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남녀차별의 시작 보여주는 분재기 발견… “여성 재산상속 후기부터 배제”

입력 2012-12-04 21:05


조선 초중기까지만 해도 양반 가문 자녀들은 남녀차별 없이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받았다. 하지만 후기 들어 유교윤리가 강화되면서 여성은 상속에서 차별받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남녀차별 상속문화의 시작을 보여주는 분재기(分財記·재산상속문서)가 확인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장서각은 4일 한국학기초자료사업 워크숍에서 조선 후기 소론의 영수이자 대학자였던 명재(明齋) 윤증(1629∼1714)의 아버지 윤선거(1610∼1669) 남매 12명의 분재기인 ‘윤선거 남매 화회문기(和會文記)’(사진)를 공개했다. 화회문기는 형제가 합의해서 재산을 나눈 문서다.

1652년 작성된 이 분재기의 가장 큰 특징은 자녀들이 돌아가며 모시던 조상의 제사를 종손이 독점하고, 제사를 지내는 데 쓰기 위해 별도로 떼어두는 재산을 종손이 관리하도록 명시한 점이다. 분재기에는 ‘가산의 20분의 1을 봉사조(奉祀條·따로 떼어둔 제사용 재산 항목)로 제출한다. 제사와 봉사조 재산을 봉사 자손(종손)이 주관한다. 제사의 남녀 간, 장차자(장자와 차자) 간 윤회(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는 것)를 금지하고 종가에서 주관한다’고 적혀 있다.

안승준 한중연 장서각 책임연구원은 “여성이 제사에서 제외되면서 여성에게 나눠주던 재산이 제사용 재산으로 설정됐다”며 “파평 윤씨 집안이 호서지방(충청도) 예학 명문가였던 만큼 이 분재기는 다른 문중의 롤 모델이 되면서 남녀차별 상속 문화를 확산하는 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선거는 율곡 이이와 함께 기호학파를 이끈 우계 성혼(1535∼1598)의 외손자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