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긍정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들
입력 2012-12-04 19:45
검사한 지 3주 만에 배달된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를 받아들고 한동안 멍한 기분이었다. 대개의 항목은 2년 전과 비교하여 별다른 변화가 없거나 수치가 약간 높아진 정도였으나 위는 한마디로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었다. 장상피화생에 위축성 위염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병명 옆에서 ‘드물게 암 진행 가능성 있음’이라는 경고문이 깜빡였다.
음주나 흡연은 안 한다지만 스트레스가 많았던 걸까, 자가진단을 하다가 대학병원 명의를 찾아갔더니 역류성 식도염이 좀 있을 뿐 다른 문제는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사진을 잘못 판독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며 위는 건강하니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유명 대학병원에서 이래도 되는 건지 따지고 싶었으나 괜찮다는 말에 수긍하기로 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이번 일을 얘기했더니 ‘정밀검진이 필요하다, 종양이 있는 것 같다’는 판정 때문에 검사비를 100만원씩이나 내고 1주일을 노심초사했다는 등의 건강검진 후일담이 많았다. 한 친구는 악성종양이라고 하여 받은 재검에서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감사합니다”를 연발한 게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고 했다.
공부도 여건이 좋아야 잘할 수 있다지만 학창시절에는 노력 대비 결과가 비교적 비례하는 편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해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비율이 높아진다. 치밀하게 자기관리를 해도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고, 뛰어난 전문가를 추종해 투자를 해도 실패하는가 하면 원치 않는 사회적 관계에 휘말려 고통을 겪기도 한다. 중년에 진입해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에 불가항력적인 부분들이 끼어들기도 한다. 친하게 지냈던 지인 네 분이 2∼3년 사이에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인생 중반기부터 큰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그분들은 긍정에너지를 뿜으며 장밋빛 미래를 향해 가열하게 달리던 중이었다. 현대의학도 그분들에게 찾아온 병을 떼어내지 못했다.
느닷없이 중병에 걸렸다가 어렵사리 회복한 친구도 여럿이고, 큰 사고를 당해 힘든 시기를 보낸 친구도 있다. 생명에 관한 건은 노력만으로, 긍정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절감하게 된다. 100세 시대라지만 변수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즈음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라는 시편 기자의 간구를 나도 모르게 읊조리게 된다. 사흘 동안 한 뼘만큼 겸허해진 듯하다. 모든 것에 두루.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