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 턴 ‘大盜’… 주유소 산 뒤 50m 터널 뚫어 5개월간 73억원어치 빼돌려
입력 2012-12-04 21:33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 하는 기름 도둑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길이 50여m 땅굴을 파 송유관에 구멍을 뚫은 뒤 5개월간 자그마치 73억원어치의 기름을 빼돌려 혀를 내두르게 했다.
경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4일 땅굴을 파 대한송유관공사 소유 송유관에 구멍을 뚫은 뒤 휘발유 및 경유 400여만ℓ(시가 73억2000여만원)를 훔쳐 판 혐의(특수절도)로 정모(34)씨 등 5명을 구속했다. 또 훔친 기름을 정씨 등으로부터 사들인 혐의(장물취득)로 주유소 업자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관련자 11명을 수배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땅굴 굴착 작업을 직접 촬영한 비디오, 범행에 사용한 장비, 범죄 수익금 1억여원을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등은 기름을 훔치기 위해 경북 김천시 아포읍 주변을 지나는 지하 송유관에서 가까운 주유소를 구입했다. 지하 3m에 있는 저유탱크 벽면을 파내는 방법으로 송유관이 있는 곳까지 50여m 땅굴을 만들었다. 곡괭이와 삽만을 사용해 5월부터 3개월간 작업했다.
정씨 등은 폭 1m, 높이 1m의 땅굴을 파면서 목표지점까지 정확히 도달하기 위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레이저 수평계와 지하공기 정화용 장치까지 동원했다. 또 땅굴 붕괴를 막기 위해 양쪽으로 버팀목을 설치했다. 파낸 흙을 신속히 밖으로 꺼내기 위해 갱도 바닥에 레일까지 깔았다.
이들은 송유관과 주유소 저유탱크를 유압호스로 연결해 기름을 빼냈다. 훔친 기름은 탱크로리에 담아 지난 8월부터 11월 하순까지 서울·경기지역 주유소에 시가보다 ℓ당 150∼200원 싸게 처분했다. 범행에 이용한 주유소 저유탱크가 넘치자 또 다른 주유소를 임차해 훔친 기름을 보관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특히 땅굴이 설치된 주유소를 ‘셀프주유소’로 운영하면서 주변 다른 주유소보다 기름값을 비싸게 책정, 운전자들이 찾지 않도록 했다. 이들은 범행으로 얻은 수익금을 분배할 때 기여도를 증빙하기 위해 땅굴 작업을 휴대전화 영상으로 촬영해 보관하기까지 했다.
대한송유관공사 측은 일부 구간에서 송유관 유압이 떨어지는 것을 감지했으나 경찰에 수사의뢰 등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종화 광역수사대장은 “이들 중 일부는 송유관 절도 등 비슷한 범죄 전과가 있었고 훔친 기름의 종류 분류 및 저장 담당, 운반책, 주유소 바지사장 등 역할 분담을 철저히 했다”고 말했다.
대구=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