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안 두렵나…성폭행범 줄지어 신청 왜?

입력 2012-12-05 00:59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성범죄 피고인이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2008년 1건이던 관련 신청이 2010년 10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총 16건이나 접수됐다. 법원 관계자는 4일 “정말 억울해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배심원단의 인정에 호소하는 편이 더 낫다고 보는 피고인도 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피고인에게 유리한 평결과 판결이 난 사례는 드물지 않다. 지난 9월 인천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은 유흥업소 종업원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혐의(강간 등 상해) 등으로 기소된 B씨(24)에 대해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성폭행 공소사실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를 포함해 최근 인천지법의 성범죄 관련 국민참여재판 6건 중 4건에서 무죄가 나왔다.



법정 양형보다 낮은 형량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한 김모(25)씨에게 7명의 배심원 중 4명은 징역 5년을 평결했다. 재판부는 이를 고려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당시 특수강도강간죄의 권고형이 징역 9년 이상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양형이다.



여성단체들은 배심원단이 가진 잘못된 성범죄 통념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인혜경 소장은 “성범죄자들 중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언론을 통해 극단적인 사건만 접했던 배심원들은 재판에서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우발적 실수 정도로 성범죄를 생각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낯선 배심원들 앞에서까지 증언해야 하는 피해자의 2차 피해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피해자나 검사 측은 국민참여재판을 선호하지 않는다. 실제 올해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16건의 신청 중 2건만 국민참여재판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들의 고민도 깊다. 성범죄에 대해 강한 처벌을 원하는 국민 여론과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의 평결,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기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무조건 낮은 평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 상대적으로 관대한 배심원단의 동정심을 기대했던 성범죄 피고인 김모(34)씨에게는 중형이 선고됐다. 김씨는 2005년 9월 자신이 노숙하던 근처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여대생 A씨(27)를 성폭행한 혐의 등(특수강간강도)으로 기소됐다. 재판에 넘겨진 김씨는 지난 9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김씨는 범행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범행 당시 김씨의 상황 등을 설명하며 배심원단의 인정에 호소했다.



김씨의 예상은 빗나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판사 유상재) 심리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 7명 중 3명은 김씨에게 징역 11년을, 다른 3명은 징역 10년, 나머지 1명은 징역 12년을 각각 평결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불우했던 가정사를 감안하더라도 죄질이 극히 무겁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