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위프로젝트] (상) 제구실 못하는 위클래스 르포
입력 2012-12-04 21:46
학생 상담·치유 위한 공간이 ‘혼내는 장소’로 전락
위(Wee)프로젝트는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10개월여 준비과정을 거쳐 2008년 10월 태동했다. 막대한 예산·인력이 투입된 현 정부의 대표적인 학교안전 대책이었다. 일종의 위기학생 안전망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대구 청소년 자살사고에서 보듯 안전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자살 등 학교 현장의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위프로젝트를 강화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위프로젝트는 방치되고 있었다.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실시한 교육정책 지지도 조사에서 1위에 올랐던 위프로젝트가 위기에 빠진 건 교과부의 철학과 관심 부족 탓이다. ‘교육, 희망을 말하다’ 캠페인(2009년)으로 위프로젝트를 지원했던 국민일보가 도입 만 4년을 넘긴 위프로젝트의 현장과 운영 실태를 점검해봤다.
경기도 안성의 중학교 1학년생 B군(13)은 현재 공격성을 줄이는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초등학생 시절 줄곧 야단맞아 온 것이 공격성의 주요인이라는 진단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른들에게 있었다. B군의 지능지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해당하는 70∼80 수준으로 언어이해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지만 어른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B군의 상태는 순회 상담교사와의 상담이 이뤄졌던 6학년 때에서야 뒤늦게 파악됐다. B군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야단만 치는 어른들에게 적개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학생을 발견·진단·치유하는 일선 학교의 시스템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국민일보는 경기도 안성과 전남 해남, 인천 등 전국 위클래스와 일선 학교의 상담 현장을 점검했다. 위프로젝트는 ‘위클래스-위센터-위스쿨’ 3단계 안전망 구조로 1차 안전망인 위클래스가 제 기능을 못하면 시스템 전체가 무너진다. 국민일보가 돌아본 위클래스 현장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진단·치료와는 거리가 멀었다.
◇위클래스가 학생 혼내는 장소= 지난달 26일 찾아간 안성 P초등학교 위클래스에서는 한 학생이 일반 교사로부터 큰 소리로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였다. 10여분 이상 꾸중이 이어지는 동안 위클래스를 책임지는 전문상담사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문상담사는 일반 교사가 학생들을 혼내는 공간으로 위클래스를 이용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문상담사는 “저 애는 수업시간에 떠드는 걸로 유명하다”며 교사를 두둔하기까지 했다.
위클래스는 마음을 다친 위기학생의 심리 문제를 다루는 내밀한 공간이다. 따뜻한 분위기에서 고민을 털어놓거나 듣는 장소다. 위클래스가 훈육실 대용으로 전락한 것은 이 학교 상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위클래스가 혼나는 장소로 인식될 경우 학생들이 상담 자체를 꺼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안성교육지원청 소속 박모(45·여) 전문상담교사는 “어른들도 장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외부 환경에 민감한 아이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천장 뚫린 위클래스=형식적이지만 위클래스가 갖춰진 P초등학교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안성의 초등학교 34곳 중 위클래스가 마련된 곳은 단 2곳뿐이다. 위클래스가 없는 곳은 교육청 소속 전문상담교사들이 순회 상담을 하는 실정이다.
위클래스가 없는 학교의 상담실은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공간으로 보기 어려웠다. 대다수 학교들은 ‘문제학생’들을 상담하러 찾아오는 순회 상담교사들에게 빈 교실이나 방송실, 예절실, 보관실 등을 내줬다. 여름·겨울철에 냉난방이 안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중에서도 박 상담교사와 찾아간 K초등학교는 심각했다. K초등학교는 비어 있는 치아건강보건실로 안내했다. 치아건강보건실은 곰팡이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전남 해남에는 위클래스의 천장이 마치 공중화장실 칸막이처럼 뚫려 있는 곳도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우려’와 냉난방비용을 줄이기 위한 ‘절약’이 이유였다. 발소리가 들리면 상담이 중지됐다고 상담교사들은 전했다.
인천 등 전국 곳곳에 천장 없는 위클래스가 적지 않다는 게 상담교사들의 증언이다. 인천의 한 전문상담교사는 “상담은 비밀이 보장돼야 하는데 천장이 뚫려 있는 등 기본적인 여건도 갖추지 않은 위클래스가 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같은 전문상담사= P초등학교 위클래스에 배치된 전문상담사는 9개월짜리 단기 계약직 신분으로 내년 초 계약이 종료된다. 급여는 실수령액 130만원 정도.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전문상담사에게 사명감을 요구하기 민망한 조건이다.
학생 상담역으로 권위도 찾기 어렵다. 일반 교사들과 제대로 협조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해당 전문상담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만 갖고 학교상담 현장에 투입됐다. “인터넷과 귀동냥으로 학생들을 상담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전문’ 상담사이지만 일반 교사보다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했다.
Key Word-위(Wee)프로젝트
위(Wee)프로젝트란 위기 학생에게 진단·상담·치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국형 다중 통합지원 서비스망이다. Wee는 We(우리들)+education(교육)+emotion(감성)의 합성어다. 교육과학기술부 주도로 2008년 10월 전국 530개 초·중·고교에 위클래스가 설치되고, 31개 교육지원청이 위센터로 선정되면서 출발했다. 단위학교별 위클래스, 교육지원청별 위센터, 시·도교육청별 위스쿨로 구분돼 단계별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설계돼 있다. 1차 안전망인 위클래스는 학교부적응 학생 조기발견·예방 및 학교적응력 향상을 지원한다. 2차 안전망인 위센터는 전문가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학생을 위한 진단→상담→치유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3차 안전망인 위스쿨은 장기적 치유가 필요한 고위기군 학생들을 위한 기숙형 장기위탁교육 서비스다.
안성·해남·인천=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