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이석] 재정절벽, 과연 암초인가?

입력 2012-12-04 19:22


미국의 의회 예산처가 미국경제가 올해 말 재정절벽에 부닥쳐 내년에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미국이 재정절벽을 막을 수 있느냐가 내년도 상반기 세계경제 회복에 중요 변수가 되는 것처럼 주목을 받고 있다. 재정절벽이란 재정 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들로 정부의 재정지출이 급격히 줄거나 중단되어 재정지출 그래프가 마치 절벽처럼 보이게 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급격하고 대대적인 재정지출 감축이 경기 침체를 악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마치 경제가 낭떠러지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이는 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별 성과가 없었던 적자재정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재정절벽 주장의 이면에는 민간 지출을 정부 지출로 변경시키면 경제가 더 성장할 것이고,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제 성장이 감축될 것이라는 암묵적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 가정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로버트 솔로 같은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들도 경기변동 과정에서 총수요가 부족할 때 정부 지출로 총수요의 부족을 메움으로써 경기 침체 현상을 단기적으로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정도로 생각할 뿐 경제의 장기적 성장이 정부 지출 증대로 달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경제 성장은 결국 민간의 저축과 이를 재원으로 한 투자 증대로 이루어진다.

정부 지출은 국민들의 진정한 동의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재정민주주의의 이념에 비추어볼 때도 재정절벽을 막자는 주장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무엇을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다. 정부는 자신의 지출을 민간의 생산으로부터 일정하게 세금으로 가져와 충당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국민들이 혹은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정부 지출에 대해 세금을 올려 충당하기를 거부한다면 이는 정부가 늘린 지출의 필요성을 국민들이 진정으로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서 국민들의 반발이 두려워 이를 충당할 세금을 늘리지 않고 국채 발행이나 중앙은행 차입 같은 다른 수단에 주로 의존했다면 그런 지출도 국민들의 진정한 동의를 얻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그들의 소비를 줄여 세금을 냄으로써 정부의 지출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는 지출이 늘어날수록 국채 발행이나 중앙은행 차입으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비록 단기적으로 재정 수입과 지출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장기에 걸쳐서도 계속 이런 괴리가 나타나 재정적자가 쌓인다면 정부 지출에 대한 국민 동의의 부재를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재정적자 누증을 방지하려는 재정 지출에 규율을 부여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 지출을 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규율 부과는 소위 포퓰리즘적 정책을 제어한다. 재정규율 부과는 당장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뿐 아니라 그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지불되어야 할 세금 부담을 동시에 고려하게 하기 때문이다. 재정규율이 작동해야 한편으로는 정부 지출을 늘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세금을 감면해줌으로써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정책이 시도되는 경우도 크게 제약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 경제의 근본적 회복은 오히려 재정절벽을 회피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재정규율을 실제로 실천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재정절벽으로 미국 사람들의 지갑이 단기적으로는 얇아질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두꺼워질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재정절벽으로 인해 미국으로의 수출이 큰 문제에 봉착할 것처럼 과장할 필요는 없다. 잠시 어려워질 수 있을 뿐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硏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