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본향을 향하여
입력 2012-12-04 17:49
히브리서 11장 13∼16절
프랑스 작가 라브니엘은 “세상 언어 가운데 최후로 두 가지 단어만 남긴다면 사랑과 여행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행에는 반드시 목적지가 있어야 합니다. 목적지가 없는 여행은 방황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모두 영원한 본향을 향해 가는 여행자입니다.
오래 살든 그렇지 못하든 사람은 누구나 가야 합니다. 길고 긴 인생 같지만 그 삶의 여정을 정리해보면 인생은 잠깐입니다. 모세는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인생의 목적지를 알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았고, 믿음의 족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 뒤에는 천국과 지옥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세에만 몰두하고 내세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세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들어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단강 저편에서 나팔소리가 울려나고 성도들의 이름이 불리는 그날은 우리에게 최고로 좋고 위대한 날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 성도들이 찬란한 영광의 세계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거하는 진정한 권리가 획득되고 회복되는 날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인간이 되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죽어주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 우리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잠과 죽음은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긴 잠과 같은 것입니다. 죽음의 참된 의미를 깨달으면 죽음은 친구처럼 여겨지고,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을 보면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거할 곳이라는 말은 ‘여행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휴식처’를 의미합니다. 즉 인생살이에 지치고 고통에 눌렸다가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 온 자녀들의 안식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안식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주께서는 우리의 안식처를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도 육체의 장막을 벗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원한 안식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갈 곳이 많을 것 같지만 딱 두 군데밖에 없습니다. 한 곳은 천국이고, 또 한 곳은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천국과 지옥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모으고 쌓고 있지만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히 9:2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후 6: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이 땅에 소망 두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 두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안도현 일산 아름다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