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선거벽보

입력 2012-12-03 19:25

1956년 3대 대선 당시 민주당의 신익희·장면 정·부통령 후보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격한 구호를 선거벽보에 넣었다. 정부수립 후 계속되던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부패를 바꿔보자는 선동성 슬로건이었다. 비록 선거에는 패배했지만 이 구호는 유권자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5·16 이후인 67년 6대 대선에서 신민당 윤보선 후보도 ‘썩은 정치 뿌리 뽑자’는 벽보를 붙였고, 민중당 김준연 후보는 ‘병든 황소 갈아치자’며 공화당을 겨냥한 벽보를 제작했다. 10월 유신 선포 직전인 71년 실시된 7대 대선에서는 신민당 김대중 후보가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참겠다 갈아치자!’라는 구호를 선거벽보에 담았다. 요즘 말로 네거티브라 할 이런 구호는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한 야권의 결집을 가져와 수년 후 정치적 격변을 초래했다.

민주화가 이뤄진 1990년대 이후에는 여야 없이 미래지향적 슬로건이 많았다. 92년 14대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는 ‘新한국창조’를 내걸어 당선됐다. ‘이번에는 바꿉시다’란 구호를 내걸었다 패배한 김대중 후보는 15대 대선에서는 ‘든든해요 김대중, 경제를 살립시다’를 주장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16대 대선에서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주창했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나라다운 나라’를 내걸고 나왔다.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이나 민주당 정동영 후보의 ‘가족이 행복한 나라’라는 구호 모두 민생과 관련된 것이었다.

광고가 자본주의의 꽃이라면 선거벽보는 선거의 총아다. 선거캠프마다 어떻게 유권자에게 다가가 득표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해 핵심 주장과 정보를 압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 벽보를 보면 당대의 유권자들이 품었던 핵심 요구나 사회의 중심 이슈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번 대선 벽보는 지난 30일부터 전국에 나붙었다.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홍수처럼 넘치는 선거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게 요즘이다. 그러나 후보 전부를 동네 한 담벼락에 죽 세워놓고 비교할 수 있는 게 벽보의 장점이다. 장황한 이런저런 해설 없이 유권자 혼자의 생각으로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것도 제 맛이다. 벽보 부착 사흘 만에 훼손 사례가 수백건에 이르고 수십명이 경찰에 붙잡혔다고 한다. 섣부른 집착으로 다른 유권자의 즐거움을 빼앗기보다 나란히 벽보 앞에 서서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더듬어 보는 기회로 삼으면 어떻겠는가.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